소유와 지배

by 법칙전달자

소유와 지배


무엇이든 창조주의 말씀이 최종결론입니다.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렇지 않기가 불가능합니다. 제작자가 정확하고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소유한다는 것을 지배한다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보기도 하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 부하나 부하직원 심지어 친구 등등에 대한 부당하거나 과도한 집착은 그들에 대한 그릇된 소유의식, 소유욕, 독점욕의 발로입니다.


관련된 원칙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면 해롭다는 것입니다.(전도 8 :9)


인간의 의식에는 어떤 그릇된 것도 생길 수 있습니다. 지배욕도 생길 수 있죠.


근래 들어 인간의 의식은 어떤 면에서 계몽된 면이 있기도 하고 그에 편승하여 퇴행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갑질이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계급이 아무리 높아도 부하 직원을 종을 부리듯 사적으로 부당하게 행사하면 SNS를 통해 삽시간에 알려지고 사회적 비난을 받고 규제를 받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 것이죠. 성적 희롱이나 추행에 대해 반발하는 의식이 강해져서 그로 인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죠.


또한 남존여비 의식이 강했던 한국에서 여자가 대통령이 된다든지 인종차별의식이 강했던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이 되기도 한 것이죠. 의식 수준이 높아진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반면 간통이나 동성애가 불법이나 부도덕 혹은 비정상적인 행위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죠.

진리나 도덕적 표준은 영원불변하지만 인간의 임의적 의식이란 가변적입니다. 세상의 풍조라는 것도 그렇죠.

아무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소유, 지배, 통치는 창조의 법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영원히 그러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자녀이든 배우자이든 그렇습니다. 어떤 인간관계도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고통과 불행, 멸망의 원인입니다.


그런 권한은 창조주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섬김입니다.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마태 20:26,28)


왕 중의 왕인 예수의 역할도 섬김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충고나 심지어 징계를 한다 하더라도 그 성격은 섬김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적으로 섬기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경우에도 인간 본연의 정상상태에서 벗어나 집착 같은 것이 곁들어 있다면 상실이나 실망 같은 큰 고통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소유의 대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특정 대상에 대해서 강한 애정이나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식에 대한 올바른 지식 없이 또 그것으로 틀 잡는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의식상태의 지배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해로운 소유욕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은 배우자나 자녀 혹은 다른 대상에게도 나타나 불행한 인간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물건을 잃어 불편해지거나 가난해질 수 있듯이 결국 사람을 잃어 여러 쓰라린 고통을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참한 말로가 될 수 있는 것이죠.


한국에서도 그렇듯이 최고통치권을 가졌던 사람들의 말로가 안 좋은 경우들이 많죠.


소유하겠다, 지배하겠다는 마음이 생길 수는 있으나 그것을 발전시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하면 자신이나 타인에게나 불 보듯 뻔한 불행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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