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後成)
인간 중심이라는 것은 인간의 보편지성에 의해 원리로 확정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조법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원리의 세 번째 요소가 인간의 선택에 따라 행불행, 생사가 주어진다는 것이죠. 만물의 그 무엇도 축복과 저주의 그 어떤 형태로든 작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인간의 선택에 따라 복으로 혹은 화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법칙이라 반드시 예외 없이 절대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이요.
두 번째는 인간이 만물을 규정, 규명한다는 것이고 첫 번째는 우주가, 만물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인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비약하여 인간은 살다 보면 자신이 통제할 겨를도 없이 어떤 일탈적인 감정이나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라도 지나치게 짜증을 내고 앙탈을 부리는 경우가 있죠. 어린아이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어른들은 훨씬 심하죠. 악함에 지배되어 그 감정이나 행동을 분출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심하게 못됐다고 비난받는 언행을 하게 되는 경우나 걷잡을 수 없이 이상한 감정이나 고통을 겪게 되어 발작적인 행동을 하거나 앓아 눞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생의 어느 시점에서요.
학자들은 후성유전이라는 개념으로 그 현상을 설명합니다.
첫 인간 부부가 법을 범했을 때 인간은 불완전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병들고 늙고 죽게 되었는데 단지 그렇게 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본래적인 아닌 부정적인 감정을 겪게 되었고 환경도 땅이 저주받았다고 할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당시에 지구의 대부분은 전쟁을 연상케 하는 정복활동을 통해 개척을 해야 하는 상태였죠. 그나마도 저주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그런 상태에서 천살 가까이 살았습니다. 초기의 완전했던 신체의 막강한 활력, 자연의 이상적인 조건이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죠. 그런데 홍수 후로 그런 조건도 급격히 악화되어 인간 수명도 결국 100세 이하로 줄게 되었고 지각이나 기상의 상태도 불인정해져 숱한 천재지변, 자연재해를 겪게 되었습니다. 원래 어떤 유익한 목적을 위해 존재했을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어떤 동식물들도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되었죠. 인간 중심원리에 따른 것입니다.
그처럼 절대적이고 완전한 자유를 준 것이 잘 못입니까? 왜 이처럼 악하게 되어 전쟁을 일으켜 서로 죽이기까지 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위해 군대를 만들고 무기를 만드는 것입니까? 그 하나만으로도 조금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것이 당연히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금전적인 기부를 하거나 입대를 하거나 지원하는 90%가 훨씬 넘는 인간들도 죽어 마땅합니다. 변명이나 참작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악할 수 있는 것입니까?
만물은 법칙에 엄격하게 고착합니다. 어떤 끔찍한 비극이 예상되어도 그러합니다.
우선 가장 으뜸이 자유의 법칙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그들뿐 아니라 그 후손 모두가 죽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엄청난 불행, 비극이 예상되는데도 선악과를 먹는 그 자유를 제지하지 않았죠.
그래도 그 후손은 자신의 죄가 아니므로 죽게 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후성유전이라는 원래의 법칙을 깨트리지 않고 그 법칙이 작용되게 한 것입니다. 법칙은 절대적으로 준수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당시에 살인죄에 대한 규정은 없었으므로 가인이 그의 동생을 죽이는 방법으로 자유를 사용했을 때 사형에 처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짓지 않은 죄에 대한 결과를 당하게 된다는 것에는 어떤 불공정성이 있을 수 있으므로 동가상응의 법칙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완전한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대속을 위해서요. 그러나 그 법칙의 적용에는 자신의 독생자의 죽임이 수반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동의도 필요하였죠.
그래도 그 법칙, 동가상응의 법칙에 고착하였습니다. 법칙의 적용에 예상되는 비극을 고려치 않는 것이죠.
첫 인간 부부의 범죄의 후과는 후성으로 유전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누구든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유전자 자체에 죽음이나 질명이나 노쇠의 유전자가 삽입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만물이나 인간에 적용된 창조법칙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후성을 알아낸 것도 얼마 안 되었죠.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비록 엄청나고 끔찍한 비극이 수반되어도 전혀 고려치 않고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이 우주라면 복을 가져오는 법칙이나 마련은 얼마나 더 그러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 역사 이래 인간이 스스로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고 이론적으로는 주장해 왔습니다. 현실에서는 터무니없이 어이없게 부조리하게 억울하게 당하는 죽음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있어왔습니다. 아벨도 그 중 하나이죠.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의 부활이 있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부활된 사람들은 모든 후성에서 벗어나게 되며 늙고 병드는 일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같이 하면 부활의 가능성이 없는 둘째 사망, 영원한 멸망에 처해집니다.
동가상응의 법칙에 순응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의 법칙에 따라 세계는 낙원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법칙에 따라 법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의 멸망도 반드시 있게 됩니다.
인간은 그 선택에 따라 모든 후성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결코 자신의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그 어떤 선한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을 것입니다. 후성에 따라 어쩔 수 없습니다. 싸우고 인내해야 하는 것은 피치 못합니다.
그러나 원한다면 그 역한 후성(유전적 악한 성향)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