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맞히는 경우는

by 법칙전달자

맞히는 경우는


인간이 창조주의 참조직에 속하여 그 교육적 마련을 통하여 모든 면에서의 온전한 진리를 전달받을 수 있으며 이를 근거로 논리적 사고, 적용하는 추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지성과 이성 모두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죠.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단편적으로 진리와 일치한 혹은 합리적인 생각을 하거나 논리적인 추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 사람들이 본성에 따라 율법을 행하면, 비록 율법이 없어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그들은 율법의 내용이 자기들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양심이 그들과 함께 증언하여 그들의 생각이 그들 자신을 고발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합니다.(로마 2:14,15)


이방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양심적으로 추리하는 경우가 있음을 말하고 있죠.


그러니 지금 이 일에 대해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저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 두십시오. 그 계획이나 일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지만,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면 여러분이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서(사도 5:38~40)


그리스도인 조직에 속해 있지 않는 가말리엘이라는 율법학자의 말이죠.


예레미야가 레갑 집안사람들에게 말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조상 여호나답의 명령에 순종해 왔고, 계속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가 명령한 그대로 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의 후손 가운데서 내 앞에서 섬길 사람이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예레미야 35:18, 19)


레갑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었는데도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해 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멸망된 여리고의 라합이나 모압족의 룻인 경우도 여호와에 대한 숭배를 선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성서의 핵심 사상 중 하나는 부활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지만 천년통치의 초기에는 죽을 사람은 다 죽고 생존한 사람들은 죽지 않게 됩니다. 반면에 과거에 죽었던 사람들의 순차적인 부활이 이루어지죠.


기독교의 교리에는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에는 없는 영혼불멸이나 지옥천당교리와 상충되기 때문이죠. 그 기본교리와 상충되는 부활을 가르칠 리가 없죠.


그런데 세속학자 중에서도 성서와 정확히 일치하게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가르친 사람이 있습니다. 맨리 피 홀과 같은 사람이죠.


과거의 기억과 개성을 유지한 채 육체를 지닌 상태에서 부활되는 것이죠.


그는 일단 죽었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어서 이미 사형이 집행된 것이어서 과거의 죄는 더 이상 문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가치관이나 사상, 성향, 개성은 그대로 지니고 부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그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죠.


사람들은 이러한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어하는 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죠.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할 것입니다. 대부분이 그러하죠. 자세히 들으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맹신이나 광신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할 것이고요. 말씀을 이루고 있는 기본인데요.


그런데 스스로 그러한 생각을 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죠.


그런 일은 이 부활에 대해서 뿐만 아닙니다. 하느님의 참조직에 속해 있지 않아도 매우 많은 면에서 성서와 일치한 사상을 증거와 논리를 기반으로 강력하게 옹호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있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인명을 소개하지 않고 그러한 점들을 소개해왔습니다. 칸트도 그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하나이며 현존하는 인물들 중에도 있죠. 물론 그들의 모든 주장이 성서와 일치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단편들이 놀라운 일치를 보인다는 것이죠.


인간의 생각은 자유분방하고 어떤 생각이든 떠오를 수 있죠. 그중에서 말씀과 일치한 생각도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 생각을 발전시키면 그와 같은 옹호가 있을 수 있죠.


그러나 참조직에 속하여 생각의 모든 면을 말씀과 일치시키지 않으면 그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칸트나 맨리 피 홀과 같은 사람들도 부활되겠죠. 가말리엘도 그럴 것입니다.


부활된 후 그들의 선택은 어떤 것이 될 것입니까?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성서는 부활된 사람들의 다수는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다가 천년통치의 끝에 멸망될 것임을 알려줍니다.


그들은 범죄 하기 전의 아담과 하와처럼 영생의 전망이 있지만 그들과 같은 선택으로 그 전망을 잃게 되죠.

어떤 경우에도 창조주는 자유의지의 선택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그 선택에 따라 그렇게 해 주는 것이죠.

지금도 인간은 자유를 아무렇게나 사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지받지 않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죠. 국가는 공식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어떤 조직들은 테러를 일삼죠.


생각도 마음대로고 말도 그러하고 행동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참조직에 속하지 않아도 부분적으로 말씀과 일치한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동도 그러하고요.


제가 그러한 것들을 종종 소개하는 이유는 자유를 의식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하고자, 논리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철학적 사고도 그렇지 않습니다.


존재론, 인식론, 의미론이나 일원론, 이원론 따위의 자가당착적인 사고는 진리와 일치할 수 없습니다. 어떤 수학문제의 답을 무작정 1이라고 찍어서 우연히 맞게 되는 경우 따위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의 교리가 100% 거짓이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분적으로 말씀과 일치한 경우가 있어도 일부 학자들이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말씀과 일치한 결론에 도달하고 그것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것과는 성격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손을 가지고 태어나듯이 자유가 주어진 채로 태어나는데 이 자유를 너무나 쉽게 잘못 사용하여 자신에게 필연적으로 저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죠.


스스로에 대한 이 통치권을 올바로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의 실패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가 그처럼 절대적으로 보장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죠. 자유를 잘못 사용하는 사람의 비율이 99.999...%라고 해도 창조에 대해 부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조용한 곳에 가만히 앉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를 실제로 사용해 보십시오.


손을 주먹으로 불끈 쥐고 누구를 두들겨 패고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99%라 할지라도 생각하는 기능이나 손을 만든 것이 조금이라도 비난받을 만한 정당한 근거가 됩니까?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도록 하는 선택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조금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욕을 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입니까?


제가 종종 전하는, “사람이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조의 법을 알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라는 사상도 세속 학자의 연구결과를 전달한 것입니다. 물론 말씀과 일치하죠.


인간은 스스로도 그런 생각까지 해낼 수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서도요.


저는 이와 같은 알게 됨이 매우 좋아 혼자 알기에는 죄책감, 양심의 가책까지 생기기에 이렇게 전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전달을 하는 사람은 세계 곳곳에 있죠.


압도적인 다수가 악과 거짓을 선택하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그 당사들은 반대로 저와 같은 사람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인간이 피조물임을 인식하고 창조의 법에 순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렇게 하는 것인지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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