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by 법칙전달자

가치


권위와 권위의식이 다르듯이 가치와 가치의식은 다릅니다.


권위도 가치의 일종이죠. 사람이 사랑과 겸손으로 지혜롭게 섬김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존영이 실 권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을 경복시킬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죠. 주변인들은 존경심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에게 복종하게 되죠. 그리고 그러한 존경심 자체가 행복입니다. 경복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행복한데 그렇게 하지 않을 리 없죠. 그의 옆에 잠시 있는 것도 금쪽같이 소중한 설레는 시간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권위의식은 일종의 교만입니다. 자신이 권위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목에 힘을 주고 거들먹거리는 태도는 타인에게 오히려 속으로는 경멸을 일으키게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접근해 오거나 그의 옆에 있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죠.


전자의 실 권위는 가치 있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 중 순위가 앞선 중요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행복도 지혜도 결실을 맺는 수고도 가치가 있는 것 중 앞선 순위에 속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이루려고 애쓴 모든 수고를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쫓아다니는 것이었고, 해 아래는 실제로 가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전도서 2:11)


경의 모든 말씀은 영감 받은 기록이죠. 창조주의 선언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실제로 가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죠.


그 근거는


지혜로운 자는 자기 길을 분명히 보지만, 미련한 자는 어둠 속을 걷는다. 나는 그들 모두가 같은 결말을 맞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마음속으로 말했다. ‘미련한 자에게 일어나는 일이 내게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나치게 지혜로워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것도 헛되다.(전도 2:14,15)


그래서 내가 삶을 싫어하게 되었으니,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일이 괴롭게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쫓아다니는 것이었다. 해 아래서 내가 그토록 수고해서 얻은 모든 것을 싫어하게 되었으니, 내 뒤를 이을 자에게 그것을 남겨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전도 2:17,18,20)


그래서 내 마음은 해 아래서 내가 애써 한 모든 수고에 대해 절망하게 되었다. 사람이 지혜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 해도,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기 몫을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헛되니 큰 불행이로구나.(전도 2:17,18,20)


살아 있는 자는 자기가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고(전도 9:5)


결론은 일시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인간 중심원리에 따라 인간은 모든 사물을 구명하고 규정하죠. 가치를 설정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 의식이 소멸하면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되죠. 그 가치가 절대적으로 0이 됩니다.


자신의 후손이 누리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며 흐뭇해하는 것도 전혀 의미가 없죠. 그리고 후손들도 계속 그렇게 되는 것이라면 그 무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훌륭한 미덕을 갖추고 지혜와 지식과 재능과 매력을 가졌다 해도 그것이 찰나뿐이고 자신이 죽어 소멸되고 일부 결과물을 후손이 누리게 된다 해도 그 역시 조금도 의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 9:5의 기록처럼 죽으면 아무것도 모르죠.


영감 받은 성서에서 허무를 외치는 이유는 그것이 주제나 참 교훈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부조리함과 생명 즉 영생의 당위성을 부각하려 하는 것이죠.


“지극히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전도 12:8)

회중을 모으는 자는 기쁨을 주는 말을 찾고 진리의 정확한 말씀을 기록하려고 애썼다.(전도 12:10)


헛되다는 것은 기쁨을 주는 말은 아니죠.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 결론은 이러하다. 참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참하느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모든 감추어진 것이 선한지 악한지 판결하실 것이다.(전도 12:13,14)


모든 것이 헛되다면 본분을 알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도서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창조주에게 호의적 심판을 받으면 죽는 허무를 피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은 그것을 주신 참하느님께로 돌아간다.(전도 12:7)


여기서 영이란 부활을 위해 저장되는 그의 기억과 개성 그리고 생명력, 미래의 생명의 전망을 의미합니다. 짐승은 죽으면 그 영이 땅으로 돌아가 소멸하지만(전도 3:21) 인간의 영은 그렇지 아니하죠.


전도서의 주제는 결코 허무가 아닙니다. 허무를 강조하는 것은 창조주를 무시하는 삶이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이죠.


인간의 본분을 무시하고 지혜나 행복이나 미덕과 같은 고상한 가치를 아무리 추구해도 그것은 헛된 것이고 심지어 미친 짓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들은 고상한 가치들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곧 죽을 것을 알기 때문이죠. 조금이라고 쾌락을 더 맛보려고 할 뿐이죠.


인간에게 으뜸 되는 가장 가치 있는 의식은 창조의식입니다. 그것 없는 인간의 모든 가치의식, 추구하는 가치들은 본질상 전혀 무가치한 것입니다. 바람을 따라 헛것을 쫓아다니는 것이죠. (전도 1:14)


진짜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 그와 일치한 가치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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