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비
나는 여러분(혹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소비하고 나 자신도 온전히 소비하겠습니다.(고후 12:15ㄱ)
뭔가 사용하면서 없어진다면 더없이 기쁜 마음이 되기 힘들죠. 자신의 자산을 타인의 영혼을 위하여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음 문장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이토록 많이 사랑하는데, 내가 그보다 적게 사랑을 받아야 하겠습니까?(고후 12:15ㄴ)
함께 있으면 그에게서 베풀어지는 자산으로 행복이 넘치는 순간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헤어지기가 참으로 아쉬운 시간이죠.
그러한 매력적인 자산이란 어떤 것입니까? 영적 보물들이죠. 물론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구체적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아름다운 경치나 감미로운 음악 등을 통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노래를 자신을 위해 불러준다면, 어떤 가족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자신을 위해 합창을 해준다면 그냐 그 가족은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준비하고 방문하여 기꺼이 자신을 위해 전 인격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이죠.
누군가가 꿀맛 같은 깨달음의 희열을 주는 가르침을 사적으로 베푼다면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의무적이거나 의례적으로 사상을 전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개인적 애정이 듬뿍 묻어 나오는 태도와 몸짓, 눈빛 등을 총동원하여 그 자신의 영혼을 소모하여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죠. 목소리에도 그 점이 듬뿍 담겨 있죠.
헤어지자마자 바로 그립죠. 자신의 영혼은 북돋워지고 위로를 얻고 힘을 얻고 풍성해졌죠.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게 됩니다.
인간 서로 간의 본연의 사랑이 구현된 모습입니다.
인간은 그 머리로는 매일 이처럼 소비할 수 있는 영적 자산을 늘려 나가야 하고 가슴으로는 사랑을 배양해야 하죠. 소비할 사랑이 풍성하게요.
정치적인 인간이나 철학적인 인간, 종교적인 인간, 상업적인 인간들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타인의 영혼을 기름지게 할 소비할 수 있는 영적 자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물론 사랑도 없죠.
가까이 있게 될까 봐 부담되는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들입니다. 거짓의 아비 사탄의 수하들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묘사된 경우는 영적으로 태어나서 영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나 해당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