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간은 전적으로 주어진 것에 따라 살고 있죠. 감각, 감정, 생각의 기능도 그렇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목적이 있죠. 인생의 목적은 행복입니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감각입니다. 그리고 감각되는 것을 통해 일어나는 감정이죠. 감각 자체도 그것을 수용하는 민감성은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생각은 행복과는 일단 가장 거리가 멉니다.
감정과 크게 연관 있는 것은 시각과 청각이죠. 미각은 크게 파생적인 감정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후각과 촉각도 상황에 따른 차이가 클 수 있습니다.
숲의 아름다운 곳곳을 보는 것을 통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는 별도로 어떤 설렘이나 그리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파생되는 감정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러합니다. 청각적인 감상에 아울러 격정 같은 것을 일으킬 수 있죠.
행복은 매우 다양해서 간단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감각에서 파생되는 그런 성격의 광대한 행복의 영역이 있다고 할 수는 있죠.
강정은 감각이 발단이 되어 생기기도 하지만 생각, 상상이 즉각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강정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감정 또한 생각을 일으킬 수 있죠. 뭐가 먼저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인간이 하는 혹은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은 불쾌하거나 부정적인 혹은 해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반복되면 건강에도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기능이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행복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그래서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사용법을 잘 모르는 것이죠.
감정은 신의 언어라고 할 정도로 신비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인간은 감정의 본질을 알 수 없습니다. 신경과학적, 심리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해 보지만 그것을 통제할 정도의 지식을 얻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물론 생각도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우발적, 맹목적, 비연속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죠.
인간의 생각이란 원래 그런 면이 있죠.
문제는 의지입니다. 자신에 대한 주권, 통치권이죠. 생각도, 감정도, 감각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어떤 감각이 생기지 않게 경험을 통제할 수 있죠. 원하지 않은 감각을 느끼지 않게 그 근원과 접촉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릇된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생각을 하게 하는 근원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흡입하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만지는 것 모두에 대해서요.
생각도 바로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에 따라 생기게 된 감정도 사그라 들 수 있죠.
단지 감정, 기분이 아니라 그의 기질, 정서, 성격, 인격이 된 감정은 중독된 정도의 것이라 쉽게 제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침투되게 허용한다면 그에 따른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인생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생각과 감정의 반복으로요. 그러니 욕이 나오고 투덜거리게 되는 것이죠.
의식적으로 생각을 전환하고 그에 따른 상상력을 사용하면 그에 따른 감정이 생기죠. 또 좋은 감정이 생기게 하는 상황이나 경험을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좋은 영을 받는 환경이나 상황에 의도적으로 접하는 것도 그 한 방법입니다.
왜 나쁜 영향을 주는 것들에 중독되어 나쁜지 알면서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물론 나쁘다는 분별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모든 것은 창조의 법을 알고 창조의식을 갖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에 따라 자신을 다스리면 행복한 감정이 기조가 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