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믿음은 여러 측면이 있죠. 일종의 사물, 영적 사물이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사물의 측면이란 예를 들면 바둑돌 같이 단순한 것도 색, 크기, 모양을 비롯하여 재료(성분), 탄력성, 경도, 용도 등등을 비롯하여 적어도 수 십 가지 이상의 측면이 있는 것이죠.
믿음, 희망, 사랑, 행복, 진리, 평화 등등과 같은 영적 사물들도 그렇습니다. 많은 측면들이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설명할 수 있죠. 그중 하나는 "‘미래에 어떠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보증된 기대(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확실한 증거입니다.(히브리 11:1)
은행에서 발행된 보증수표가 현금과 같은 정도의 신뢰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현금과 마찬가지로 보는(믿는) 것이죠.
단지 “자의로,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정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절대권위에 의해 보증된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죠.
또한 증거를 통해 갖게 되는 의식상태라고 하지 않고 믿음 자체를 증거하고 하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증이라는 표현도 있죠. 물리적, 현상적 증거라는 것이 있으면 논리적, 심리적 증거라는 것이 있습니다. 후자가 더 확실하죠. “논리는 물리에 앞선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현상적인 것은 증거인 것처럼 위장되어 제시될 수 있죠. 그러나 간파되면 결코 심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없어도 논리적 필연성이 확인되면 그 확실성 자체가 증거로서의 실질적 효력을 갖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라는 것에 대한 것이 믿음인데 미래에 대한 것이 주가 될 수 있으나 현재나 과거에 대한 것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예수가 성서에 기록된 바처럼 활동했으며 현재는 하늘에 왕으로 즉위해 있으며 곧 있을 미래에 땅에도 그 통치권을 직접 행사할 것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 모두가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특성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히브리 13:8)
그런 특성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또 당연히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누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다면 그가 그 점에 대해서 그러할(영원할) 것을, 믿음에 대한 위의 정의에 따라 믿을 수 있습니까? 그 점에 대한 입증된 증거가 있습니까?
사람에 대해 그렇게 믿고 행동했다간 실망에 처하게 되거나 배신당할 수 있죠. 인간은 여러 면에서 믿을 수 없죠.
사람은 믿는 대로 행동하고 믿어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떤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그대로 행동을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씀대로 살지 않죠. 오히려 온갖 거짓을 믿습니다. 정치인들의 말을 믿고 전쟁에 나가 살인을 하는 것이죠.
말씀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
모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보고 있는 것처럼 계속 확고하게 행하였습니다.”—히브리 11:27.
믿음은 종교적 신앙과는 전혀 다릅니다. “나 예수 믿어.”하는 그런 관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예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기독(그리스도)교’라는 표현 자체가 거짓입니다.
그리스도는 종교적인 분도 전혀 아니며 종교와 상관도 없습니다. 종교는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한 신앙’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증거가 확실한 즉 진리는 결코 종교나 종교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독’이라는 것은 통 체로 거짓이며 모든 기독교인들은 말씀대로 살지도 않으며 믿지도 않습니다.
역사상의 행적도 그러하며 사생활도 그러하며 미사나 예배방식도 그러합니다. 기본교리도 그러하고요. 말씀에 없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죠. 말씀에 대한 믿음은 없습니다. 종교를 이용해 세속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는 정도이죠. 기복종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자기네 교회 나오라고 포교하는 것은 증거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사람이 어떤 메시지에 따라 실제로 행동하지 않으면 마음에 보증된 기대도, 확실한 증거도 없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믿음은 현대인에게 자동차의 활용(소유가 아니라)의 필수성보다 더 필수적인 것입니다. 집보다 옷보다 더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어떠할 것인지 상상할 수 있듯이 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삶은 그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영적 사물은 반드시 소유해야 합니다. 행복과 생명을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