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심리
스트레스나 긴장, 공포, 흥분 등의 강한 감정은 신경계를 자극하여 심박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높아지고 동공이 확대되거나 기관지가 화장되거나 하는 생리현상이 생기는데 이는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율신경계 즉 몸이 알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죠. “혈압아 좀 낮아져.”라고 명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소화효소가 더 많이 분비되도록 지시할 수도 없습니다.
심리뿐 아니라 운동이나 식사 같은 행동도 물론 그런 생리현상을 일으킵니다. 흥분을 해도 운동을 해도 심박수가 올라가게 되죠.
멜라토닌이나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화학물질)의 작용을 심리로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세로토닌, 도파민, 엔드로핀 등등의 신경물질이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분비하도록 직접 지시할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이러한 지식이 필요합니까? 오랜 기간 동안 인류에겐 이러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또한 오늘날 이런 지식을 전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유물론적 사고를 가지고 약물 치료 같은 것으로 트러블에 대응하는 방식이 성공적이라고 믿기에는 그 결과들이 허무한 것이죠.
지식도 있다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고전 13:8,9)
전문가들이라 할지라도 그 지식이란 온전한 것이 못되죠. 그리고 그런 지식에 근거해서 이 약을 먹으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과 같은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전문가라는 사람 자신도 자신의 인생문제, 건강문제를 실제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들이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정확하게 아시는 것처럼 내가 정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고전 13:12)
사실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지식에 근거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죠.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 이 세 가지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랑입니다.(고전 13:12)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 하느님께서 주시는 모든 충만함으로 가득 차게 되기를 바랍니다.(에베소 3:15)
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에만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시끄러운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예언의 선물을 가지고 있고 모든 신성한 비밀과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졌다 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내주어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준다 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고전 13:1~3)
탁월한 지식이나 믿음, 능력,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봉사도 순수하고 전적으로 사랑에 기초한 것이 아니면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사랑, 하느님의 사랑이란 지극히 강렬하고 순수하고 완벽하며 성품이나 행동에 철저히 스며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즉 사랑의 구현체라고 하는 것의 의미입니다.
사랑이란 결코 심리적인 어떤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인간 몸의 생리적인 시스템 역시 사랑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적인 설계만으로 그러한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심리시스템 또한 그렇습니다.
인간의 유물론적 지식이란 사실상 비천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리보다 물론 심리가 앞섭니다. 생리에 관한 지식보다 심리 즉 의식에 과한 지식이 월등히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그 위에 있습니다.
올바른 동기로 기꺼이 동료를 섬기려는, 타인에게 유익을 주려는 비이기적인 열망을 가진 사람만이 그런 사랑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만물을 온전하고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런 지식이 있는 것처럼 작용합니다.
인간은 우선 그렇게 된 다음 지식이란 것을 쌓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