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초와 영원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유일하게 의미 있게 기술하는 방법은 말씀에 근거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또 창조주의 선언들은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만물의 시초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고안한 하나의 생각이 빅뱅인 것이고 그 시점이 근래에는 138억 년 전쯤이라고 하는 데 최근에는 터무니없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죠.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것이죠.
완전 무에서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 등이 갑자기 생겨났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여 영원 전으로 소급하는 이론도 있습니다. 무시무종 즉 시작도 끝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시초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最初, 上帝 创造 了 天地.)
창세기 1:1절의 이 구절에서
‘시초’ ‘하느님’ ‘하늘’ ‘땅’ ‘창조’의 본질이 각각 무엇인지 인간이 알 수도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어에만 있는 ‘에’, ‘께서’, ‘을’도 설명하려면 간단치 않을 수 있습니다. 직관적이고 포괄적으로 막연하게 파악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시초에’도 한국어로는 두 개의 단어 하나의 어절, 영어로는 세 개의 단어, 중국어로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글자의 모양새도 조금의 공통점도 없어 보입니다. 같은 뜻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는데요. 발음도 그렇습니다. 같은 한국어라도 ‘시초’를 ‘태초’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의미적인 면에 있어서도
‘시초’라는 것이 무엇인지 ‘창조’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하늘’과 ‘땅’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가 정확히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하다라도 이 간명한 표현들은 중요한 개념들은 전달하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로 그 뜻을 파악할 수 있죠.
매우 큰 실용적인 유익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창조주의 선언에는 인간의 과학이나 논리, 연구와 일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항상 그 선언이 먼저이며 최종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죠.
참하느님께서 만드시는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전도서 3:14ㄱ)
이점은 우주 전체에 있는 모든 전자에도 적용됩니다. 처음에 있었던 그 모든 전자가 하나라도 없어지거나 더해질 수 없는 것이죠. 물론 전자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자라도 그러하다는 것이죠. 다른 모든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 중에 당연히 법칙도 포함됩니다. 성질이나 원리도요. 전자에는 질량, 전하, 스핀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들도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의 전라라도 그것에서 스핀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불가입니다. 실제 그러하며 또한 그러하다고 피치 못하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전자도 법칙도 보이지 않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원칙도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물들은 결코 같은 시점에 생기지 않았습니다. 전자, 지구, 인간이 처음 있게 된 시점은 다 다릅니다.
그런데 전자나 법칙들이 영원한 것처럼 그 시작시점이 결코 시초나 영원 전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러한 것들도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까? 그것은 ‘영원’을 정의하기 나름인데 영원이라고 번역한 어원의 본래의 의미는 ‘한정 없는(indefinite)’이라고 합니다. 끝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죠. ‘무기한의’, ‘분명히 규정되지 않은’이라는 의미도 있고요. 문자적인 영원은 보이는 현상적인 것에 적용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들이 일상에서 ‘영원’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도 그렇습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한다." 혹은 "... 이여. 영원하라."고 할 때 문자적으로 그러함을 염두에 두었다면 일종의 기고만장입니다. 순간의 감상이나 감정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죠. 바로 다음 날 그 감정이 바뀌고 그 말을 철회할 수도 있는 것이죠. 또한 인간 자체가 그 현실이 영원과는 너무 거리가 말죠.
실제로도 동식물들은 수명이 있고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도 그러합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감가상각되는 것이죠. 결국 시간의 경과에 따라 흔적도 없이 해체되기도 하죠.
지구나 태양도 수 십 억년이 지나면 현재 상태의 그 수명을 다할 것이라고 하죠. 초신성의 폭발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게 맞다면 문자적으로 영원한 것은 결코 아니죠.
그러나 현실적인 수명이 100년도 안 되는 인간이 그것을 염려할 바는 아니죠.
그런데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구성하는 입자는 하나도 소멸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던 모든 아원자, 소립자들도요.
근본적인 것들은 그렇지만 그것들이 조합된 것들은 물리적, 화학적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죠.
생체를 구성하는 것들은 복잡한 탄소화합물 즉 유기물들이죠. 바로바로 무기물로 전환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포도당이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되면서 심지어 인간이 사고할 때도 필요한 에너지를 생성한다는 것이죠.
법칙이 무수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영원하다는 것이 적용되는 대상은 틀림없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불변이라는 의미도 전혀 아닙니다. 전자 제체도 그 위치나 물리적인 상태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 존재나 기본성질이 그렇다는 것이죠.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엄격하게 절대적으로 그러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다음 문장에서 밝히고 있죠.
사람들이 그분을 두려워하도록 참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전도서 3:14ㄴ)
인간중심원리의 세 번째 요소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주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모든 만물과 법칙이 인간에게 저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모든 것을 들려주었으니, 결론은 이러하다. 참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참하느님께서는 모든 행위와 모든 감추어진 것이 선한지 악한지 판결하실 것이다.(전도 12:13,14)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그 본분을 망각하면 예를 들면 엔트로피 법칙이 그에게 적용되어 그의 시체도 썩어 완전히 해체되기에 이르게 되죠. 물도 익사의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미생물들도 질병을 일으키는 활동을 하는 것이죠.
그러나 창조주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갖는다면 모든 만물과 법칙들이 축복으로만 작용합니다. 그 어떤 것도 인간에게 해가 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영원히요. 인간이 발견한 인간 중심원리와도 일치하죠.
다음 구절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요, 장차 있을 일도 이미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참하느님께서는 뒤쫓기는 것(혹은 지나간 것)을 찾으신다.(전도 3:15)
인간이 추구하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뒤쫓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유법칙과 인간중심원리에 따라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우주의 개척에 있어 그 재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우주의 어느 지점 어느 행성을 어떻게 개척하든 인간이 하는 일이란 인간의 관점에서나 장차의 일이겠지만 창조주의 관점에서는 과거에 있던 것, 지나간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시공식빵의 비유에서도 알 수 있죠.
인간은 계속 창조활동을 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을 지나 계속 새로운 창조를 해나가게 되죠. 인간에게도 곧바로 과거가 되죠.
위 구절에서 ‘그러나’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우주를 인간 중심원리에 따라 창조하였으므로 인간에게 뒤쫓기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이죠.
인간들도 우주가 이미 140억 년 정도 지났다고 하죠. 앞으로의 수 조년, 수 경년 후의 우주를 예측하려 하죠. 그도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될 것입니다.
하고자 하는 말은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들에게 주셔서 몰두하게 하신 일을 보았다. 그분은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게 만드셨다. 또 그들의 마음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두셨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참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전도 3:10,11)
인간이 뒤쫓기는 해도 영원히 그렇게 해도 수 경년의 수 경배를 살면서 그렇게 해도 그러할 것입니다. 아무리 몰두한다 하더라도요.
하느님은 인간에게 개념만 영원을 넣어두신 것이 아닙니다. 원래 그렇게 살도록 하셨으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되도록 구체적 마련을 하셨습니다.
인간은 그 본분, 창조주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망각하지 않아서 기본적으로 그런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때에 따른 그 무궁무진하게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새로운 발견과 창조를 영원히 해 나갈 것입니다.
인간은 자동적으로 창조주를 두려워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의지를 사용하여 의식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위와 같은 선언들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