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성의 비중

by 법칙전달자

성의 비중


자동차에 기름을 넣듯 그런 식으로 인간은 음식을 흡입하지 않습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하니 단지 의무적으로 음식을 먹진 않죠.


먹은 행복은 삶의 주요 부분입니다. 그 비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알코올 음료도 본래적인 것으로 인생에게 즐기도록 주어진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악 물론 빼놓을 수 없죠.


술과 음악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이 아니긴 하죠. 음악은 행복에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술은 사람마다 다르죠.


숲은 단지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는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면이 더 강력하게 와닿죠.

음식이나 음악감상, 숲산책에 대한 것들은 드러내놓고 말할 수 있죠.


또 생활가운데 그러한 것들의 배분도 개인의 임의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이나 숲은 깨어있는 내내 주변에 흐르고 있어도 지루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은 조심스러운 면이 있죠.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절대다수의 인간들은 성에 대해 그릇된 개념이나 도착적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18,19세에 이르면 성호르몬이 뇌의 60%에 이르기까지 지배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성에 대한 정상적인 교육은 거의 받지 않습니다.


인간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오남용을 하게 되어있죠. 그리고 제대로 그 유익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성에 대해 가장 크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 성적으로 생각을 하거나 느끼거나 행동을 하는 대상은 배우자로서 유일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입니다.


인간들은 성과 관련한 사랑이나 의에 대한 교육도 전혀 받지 않습니다.


인간이 숭배와 관련된 것은 전적으로 창조주에게 향해야 한다는 것과 같죠.


사실 거의 모든 인간이 성에 대해 비정상적인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다소간 병적이고 도착적이죠. 성서에는 반복적으로 성적부도덕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성적인 쾌락, 즐거움, 그 행복이란 형언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신비스럽고 강렬한 것일 수 있습니다.

처녀와 총각이 결혼하게 되면 처음에는 성적 행복이라는 면에서도 서툴고 초보적이라 할 수 있죠. 사실 잘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 쾌감의 질과 강도가 나날이 더 해가는 것이죠. 그것은 단지 쾌락이나 행복이라는 표현으로도 잘 묘사되지 않는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배우자 외의 다른 이성에게는 성적인 면으로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성 동료에 대해서는 순수하게 친자매나 친형제처럼 생각하여야죠.


한 지붕에서 함께 자란 친 남매인 경우 어떤 경우든 성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것이 정상이죠.


다윗의 한 아들인 암논은 그의 이복누이 다말에게 욕정을 품었습니다. 기회를 보아 강간을 하였는데 무슨 환상적 성적 쾌락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겠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으므로 그 실망감은 미움으로 변하여 그녀를 내쫓았습니다. 다말은 울면서 그의 친오빠 압살롬에게 뛰어갔죠. 그 당시에는 일부다처제가 보편적이어서 친오빠가 아버지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였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누이를 그처럼 욕보이고 인생을 망치게(?) 한 이복형제는 임논을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고 2년쯤 후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야곱의 딸 중 디나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의 친오빠들에게 금지옥엽이었을 것입니다.


주변의 이민족 왕자 중에 그녀를 사랑한 사람이 있었는데 가까이 있었을 때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여 그녀를 범하였습니다.


이 경우 그 왕자는 위의 암논과 달리 더 집착하게 되어 야곱의 집에 혼인하게 해달라고 애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디나의 친오빠 중 둘은 그만 죽여서는 안 되고 그 부족의 남자들 모두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였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배우자가 아닌 비슷한 연령대의 이성은 친 누이나 친오라비로 생각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어머니나 딸로 아들이나 아버지로 생각할 수 있죠.


조금이라도 성적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목적으로 한 데이트 기간이나 구애기간에도 성적인 접촉과 관련해서는 엄격한 자제를 나타낼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 접근과 접촉은 반드시 배우자에 국한한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이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그리고 결혼 마련에 대한 충성과 충절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모든 것은 결국 성적 불행이나 불능으로 이어지며 본연의 성적 행복은 한 번도 누리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자에 대해서는


너의 샘이 축복을 받게 하고, 젊어서 얻은 아내와 함께 기뻐하여라. 

언제나 그의 젖가슴으로 만족하고 늘 그의 사랑에 매료되어라.(잠 5;8,9)


이와 같이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샘이 축복을 받게 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어떤 인간도 완전한 젊음과 건강을 누리지 못하고 이내 늙고 병들듯이 지금으로서는 어떤 인간도 본연의 성적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성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두 사람의 이상적인 부부라면 지금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성적 행복이죠.


단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고전 7:29)


그것이 명령처럼 권고받는 것이지만 드러내놓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매우 많은 종류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의 비중은 개인이 어떤 원칙과 상황에 따라 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식으로 즐기는 것의 비중을 크게 축소해야 할 때입니다.


물론 영적 즐거움이라면 항상 그 기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물질적, 신체적, 감각적인 것이라면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이 세상의 장면은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7:30,31)


이 원칙을 진지하게 고려하여 생활상의 비중을 정해야 합니다. 자신처럼 즐길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는 동료들도 물론 고려할 필요가 있죠.


독신이라면 생활가운데 성의 비중이 0이 되어야 하죠. 부부라면 시대의 긴급성이나 주변상황에 대한 적절한 인식을 반영하여 제한적이 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온갖 선물의 근원에게 충성을 보일 때 그 넘치는 행복들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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