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관점에서
무엇이든 제작자가 그 사물에 대해 가장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도 그러하죠. 그 의식의 창조자가 가장 잘 알고 계시죠.
인간에게는 감성과 관련된 의식과 언어와 관련된 의식이 있습니다.
여름밤 바닷가 모래사장에 서보십시오 우선 세계는 하늘과 땅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땅은 바다와 육지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죠. 크게 삼분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성의식이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창조와 관련하여 아직 망원경이 없었던 시대의 인간의 입장에서 창조에 대해서 기술되는 것이 적절합니다.
시초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형태가 없고 황량했으며, 깊은 물 위에는 어둠이 있었다. 하느님의 활동력은 물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창세 1:1,2)
이는 여섯 기간 동안의 창조이전에 대한 묘사이죠.
하늘, 땅, 물(바다)이 언급된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늘(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빛과 어둠이었으므로 어둠의 언급도 자연스럽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형성이전의 초기에는 가스덩어리와 티끌의 집합체였다고 하니 형태가 없고 황량하다는 표현과 조화를 이루는 면이 있습니다. 고온인 상태였다면 주변의 물은 수증기 상태였을 것이고 수증기는 작은 양으로도 빛을 차단하죠. 지구의 표면에 빛이 도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피도 액체인 상태에 비해 수천 배로 커지므로 지금의 지구의 안팎의 모든 물이 그렇게 된 상태로 지구를 감싸고 있었다면 깊다고 할 수 있고 짙은 어둠의 상태였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활동력이 운행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이런 기록은 인간이 꾸며내기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른 모든 창조신화와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음에 대한 명백한 증거입니다.
밀집된 가스체였던 지구는 급속히 식어 표면은 고체가 되었는데 그 주름으로 인해 언덕과 호수들이 산재하게 되었고 표면의 물은 식어 바다가 되었고 일부는 수증기 상태로 공중에 떠 있었으므로 중간에 공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높은 산이나 깊은 바다는 없었습니다. 내부의 상당 부분은 아직 액체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중의 물이 투명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려 네 번째 기간이 되어서야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의 시각에서 천체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표면에는 하느님의 활동력이 운행되고 있었으므로 그런 상태에서 세번째 창조기간에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인간의 시각에서 그렇다는 것을 알 수는 없었으나 성서에 둥근 지구가 공중에 떠 있다고 묘사한 점 또한 경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물의 순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죠.
중략하고 성서는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고자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입증된 과학과 상충된 점은 없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잡고 의로 징계하는 데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전히 유능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할 준비를 완전히 갖추게 해 줍니다.(디모데 전 3:16,17)
짐승을 조상으로 여기는 진화론자는 하느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신을 섬긴다는 모든 기독교인들도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유능할 수도 선할 수도 없으므로 세상과 그들이 삶의 모습은 전혀 이상적이 아닙니다.
선하고 유능한 사람이 운영하는 세상이 지금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맑은 날 심야에 해변에서 이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우주를 둘러보십시오,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