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의 원인
섬세하다는 것은 취약하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악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섬세함은 갖지 말아야죠. 민감한 자존심 같은 것이죠. 정의하기에 따라 자존심 자체가 악한 것입니다.
사실관계, 논리관계만 판단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해심, 사랑, 관용이 바탕이 되면 더 좋습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경멸조로 악담을 하였거나 심지어 가벼운 손찌검을 한 경우에도 일단 감정적 반응이 없어야 합니다.
그 말이 맞으면 자극적인 방법으로 일깨워 준 것에 고맙게 느낄 수 있죠. 그리고 그 나쁜 말이 진실이 아니면 즉 틀린 말이면 다행인 것이죠. 고맙거나 다행스러운 것이죠.
어쨌든 부정적인 감정이나 악한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대의 인격적인 취약성에 의해 전적으로 부당하게 그렇게 한 것이라면 어떻게 도와주어서, 즉 지혜롭게 일깨워줘서 그런 점을 시정하게 할 수 있을까를 동정적인 마음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죠. 그런 부덕을 그가 버리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그에게 불행의 원인으로 작용할 테니까요. 이런 경우에도 나쁜 감정은 생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다소간 실제적인 피해가 있었더라도 나에게도 용서라는 것을 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긍정적인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마십시오. 도리어 누구든지 당신의 오른뺨을 때리거든, 그에게 다른 뺨도 돌려 대십시오.(마태 5:39)
뺨을 때리는 행동을 하는 목적은 아마도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는 화나게 하거나 모욕을 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했고 그러한 행위는 머리 위에 숯불을 올려놓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했는데 정화의 효과를 볼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머리에 뜨거운 것을 올려놓으면 “아! 뜨거워!” 하면서 고개나 허리를 수그릴 것입니다.
즉 “나는 저 사람에게 모욕이나 고통을 주려고 했는데 내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네.”하고 수그린 자세를 취할 수 있죠. 더 이상 저 사람에게 악인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죠.
이런 경지의 인격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주는 것이니까요.
상대에게 손가락질하는 일도 없습니다. 정죄하려 하지도 않죠.
인간은 어차피 불완전함으로 가득합니다. 누구든 이해되고 용서받아야 하는 면이 있는 것이죠.
인격에 뾰족 뾰족하고 딱딱한 면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딪히면 찔리고 고통을 받는 일이 생길 수 있지만 자신이 밀가루 반죽이나 물과 같은 존재가 되면 그만입니다. 찔리거나 깨질 여지가 없는 인격을 지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드럽게 감싸서 치유의 효과도 볼 수 있죠. 또 원과 같이 모남이 전혀 없어 누구를 찌르는 그런 접촉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상처받을 여지없이 인격을 관리한 사람이야 말로 자유, 평화,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합당한 슬픔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은 그런 류의 상처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아 생기는 감정이 아니니까요.
동료인간이 피치 못하게 재난을 당했을 경우나 자신이 한 행동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이죠.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삭막한 감정의 소유자가 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 본위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갖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당화하고 위로를 받으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식의 감정 자체를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기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