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차이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의 성향이 어릴 때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이렇게 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땅에서는 씨 뿌리고 거두는 일,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창세 8:21,22)
현재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현상들은 원래적인 것도 정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창조주는 인간 때문에 땅에 저주를 퍼부었는데 그렇게 한 이유로 또 그렇게 한다면 완전 말살이 되어 창조 목적 자체가 실패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홍수 후에도 바로 인간 사회는 급격히 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4,000년이 훨씬 넘게 그와 같은 전면적인 멸망은 없었습니다. 물론 조만간 물에 의한 멸망은 아니지만 땅과 동식물에 대한 저주가 아닌 인간 세상만의 멸망이 대대적으로 있게 되죠.
위 구절에서는 홍수 전후로 달라진 상황의 일부를 시사해 줍니다. 인간에게 쾌적하지 않은 지금과 같은 가상상태가 원래적인 것이 아님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개 년 단위의 파종과 추수가 일반적이지만 원래는 열매들을 따 먹으면 바로 다시 나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죠.
낮과 밤도 원래적인 상태와 지금이 차이가 있음을 알려 줍니다. 구체적으로 알려주지는 않지만 짐작이 가는 바가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간이 어렸을 때부터 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 중심원리에 따라 모든 주변현상도 급격히 악화된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는 창조의 불안정성이나 불완전함을 조금이라도 시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의지의 절대적임을 말해주는 것이죠. 인간은 악을 선택할 수 있고 그 결과의 피할 수 없음도 절대적임을 밝혀 주는 것입니다.
오히려 창조의 목적 역시 틀림없이 성취된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창조의 목적이 인간의 영원한 행복인데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가차 없이 제거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죠.
인간은 지유로워야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자유를 서로를 죽이는 데 사용하죠. 지배하고 통제하려 들죠. 그것이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동료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려 하는 것이죠.
인간의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 자신입니다. 스스로의 그 절대적인 자유를 그렇게 사용하는 인간들을 멸망시켜 동료인간의 행복을 위해 자유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로서의 지극히 당연한 처사입니다.
지금의 인간들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악한데 96% 이상이 욕을 하다고 하는데 그 자체가 끔찍스러운 악입니다. 사형죄에 해당하는 것이죠. 어른들 자체가 욕을 권한다고 하니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욕은 언어폭력이라고도 하고 금기어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욕을 하는 것은 나의 문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절대적 자유를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들은 그 정도로 악한 것이 아니죠. 그 내막을 알면 알수록 이루 형언할 수도 없을 정도로 경악스럽다고 합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불쌍하게 여기지 말고 다 죽이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요즘은 아이들도 악의 화신 그 자체입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그들의 언어 자체가 포악합니다.
물론 어른들이 더 하죠. 그 어른들 중 뽑히고 뽑힌 인간들이 공식적으로 전쟁을 일으켜 대량살상을 하니까요. 그런 인간들을 통치자라고 뽑는 인간들도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장인간쓰레기들이 통치자라고 뽑히는 것이죠. 한국만 보다라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욕쟁이가 통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깊이 일상화되어 결함으로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다행인 것이 언제든지 멸망이 임해도 당연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죠.
세상은 온통 쓰레기장이므로 청소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창조주는 그처럼 무책임하거나 태만하지 않습니다.
물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죠.
어떤 사전에는 하느님의 정의가 "전지, 전능, 영원, 무한, 최고, 절대, 유잃의 존재"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만간 심판이 집행될 때 그들은 무기력하게 착착 죽어가면서 그런 존재가 실제로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홍수 때 사람들이 익사하면서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