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다른 차원에서

by 법칙전달자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눈은 공간을 입체적으로 파악하여도 실제로는 표면만 보이죠. 가장 껍데기만 보이는 것입니다. 옷을 입으면 피부도 보이지 않죠. 피부를 뚫고 피나 뼈, 내장을 동시에 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벽을 투과하여 내면을 동시에 보는 것이 불가능하죠. 너무 멀거나 가까워도 너무 작거나 커도 너무 어둡거나 밝아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질을 가진 것은 그 성질 때문에도 보이지 않죠. 가시광선만 볼 수 있죠. 그렇다고 그것에 불만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흑백으로만 보이는 눈을 가진 동물도 그로 인해 불만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육안, ‘봄’은 많은 제한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로 인해 고통이나 큰 불편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최적의 상태이죠. 보는 것이 즐거우려면 지금과 같아야죠.


그러나 보는 것을 통해 뭔가 정확히 판단하려면, 뭔가를 알아내려면 육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보여야죠. 현미경이나 망원경, 내시경, 엑스레이, 적외선카메라 등이 필요한 것도 그 이유이죠.


게다가 통찰력이나 이해력의 정의에도 본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수평면에 존재하는 인간은 두께라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들 서로 간에는 외부의 곡선밖에 보지 못하지만 3차원에서 보면 그들의 두뇌나 내장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빠짐없이 볼 수 있죠. 그것을 읽을 수만 있다면 그들의 생각도 정확히 알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4차원에 어떤 존재가 있어 인간을 본다면 인간 내부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훤하게 볼 수 있겠죠. 신들이 4차원 이상에 거하는 존재라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뇌 안을 본다 해도 읽는 능력이 없다면 생각을 알 수는 없겠죠.


창조주는 지난 과거도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죠.


인간이 어떤 상황이나 본질을 정확히 볼 수 없다면, 관련된 모든 것을 정확히 알 수 없다면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할 때 인간은 판단이라는 것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목적이 행복이지 앎이나 심판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인간에게 원래 허용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눈이 매우 제한적인 것처럼 인간의 지적 기능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그 영역에서 아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기능이 애초에 없습니다. 인간이 팔을 휘저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지성도 겨우, 매우 힘들게 알아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타인이 그렇게 알아낸 것을 배울 뿐입니다.


단 인간의 감성은 현상에 대해 쉽고 즉각적으로 파악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탕은 희고 달며 분말로 되어 있죠. 태양은 붉고 둥글고 밝습니다. 논쟁의 여지도 없고 연구의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에 따른 좋은 감정도 느낍니다. 일출과 석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죠. 과일은 달콤하게요.

그런 식으로 느끼는 것이 뇌의 존재 목적입니다.


인간은 여러 면에서 한계를 알고 이에 겸허히 순응해야 합니다. 고차원에서 보는 능력과 읽는 능력이 없다면요. 신체를 가진 인간인 이상 어떤 인간에게도 그런 능력이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주제넘게 판단하고 인간들은 서로에게 주장을 하고 욕을 하고 저주하고 단죄하고 급기야는 그걸 실현시키겠다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주장이 관철이 안 되면 싸움질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행복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을 심각하게 잘못 사용한 결과입니다.


벼랑에서 뛰어내리면서 팔을 휘저어 나는 시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파멸에 이르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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