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고 해서
나쁜 것을 없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모르는 것을 없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맛이 없다고 하는 경우 맛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죠. 까닭 없이 미워한다고 할 때 그 미움의 원인을 모른다거나 의식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의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 감정, 행동의 90% 이상은 무의식적인 것입니다. 의도적이거나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나 고의성이 없다 하여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욕이 문화화, 습관화, 인격화되어 충동적, 무의식적으로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해서 그 욕에 대한 불이익한 결과를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까닭 없이 나를 미워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에 대해 변명할 구실이 없습니다.(요한 15:22,25)
미움 그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표현이 죄가 되죠. 몸은 무의식의 실체라고도 합니다. 몸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몸 즉 행동은 대개 무의식의 표현입니다. 위 구절에서 미워했다는 것은 미움을 행동으로 나타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것 즉 영적 자산이 없는 것은 그렇게 가난하게 된 것이 고의적이 아니라 해서 그 불이익을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많고 적음은 영적 자산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박사학위를 열 개나 가지고 있어도 영적 자신은 전혀 없을 수 있습니다. 설령 성서를 외운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영’과 ‘지’ ‘영적(靈的)’과 ‘지적(知的)’은 전혀 별개일 수 입습니다.
오히려 세속적 지식이 많을수록 영적 자산은 빈약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물질 즉 돈이 없으면 못 살 듯이 영적 자산이 없는 사람은 인간으로서 본연이 삶이 유지되지 못합니다.
영적 자산이라는 것은 그 누구든 의도를 갖고 손만 뻗치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도가 없어 가난하게 된 결과를 변명할 수 없으며 그 대가를 피할 수도 없습니다.
영적인 눈이 없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이 어둠의 세상에서 방황하는 것도요. 그러다가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여 희망 없이 죽게 되는 것도요. 지금의 사람들은 부활되지 않는 죽음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