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과거 어느 때보다 오늘날 두드러진 것 같지만 사실 인간 역사 태고적부터 있어 온 것입니다. 신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 무지와 미신이 지배했던 시디에나 어떤 필요에 의해 인간이 고안해 낸 것으로 생각하고 지금의 계몽시대에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그게 단지 생각에 머무르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는데
어리석은 자는 마음속으로 “여호와는 없다” 하고 말한다. 그들은 타락한 행동을 하고 가증한 행위를 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시 14:1)
3,000년 전의 기록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문제죠. 신이 정한 것이라고 하는 그 거추장스러운 도덕표준을 무시하여도 되었던 것이죠. 선악도 인간이 임의로 정하는 것이며 심지어 선악이라는 개념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홀가분하게 사는 것이 자유라는 것이죠.
그들이 하느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들을 승인받지 못하는 정신 상태에 내주셔서 그들이 합당하지 않은 일을 하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로마 1:28)
2,000년 전의 기록입니다.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특히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생각이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들이 창조주를 무시한다고 해서 숭배에서 벗어나게 되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습니다. 국가, 돈, 과학, 쾌락 따위를 숭배하는 것으로 그 대상을 바꾸었을 뿐입니다.
물론 오늘날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수치는 그 이전 어느 때보다 많아서 수십억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성격은 크게 달라져 이미 톨스토이에 의해 선언된 것처럼 그들이 진실로 마음으로 믿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떤 필요에 의해 신앙이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는 것이죠.
오늘날 실제로 사람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무신적 유물론이고 사람들은 종교보다는 당연히 세속을 더 중요시 여깁니다. 교회보다는 학교와 직장을 중요시하고 그리고 세속적 정파의 어느 쪽에 속해 있죠.
종교색이 강한 이슬람교나 힌두교도 전혀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관념적으로 알라를 믿는다든지 예수를 믿는다든지 유신론자라고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거짓이 되는 것이죠.
그들 모두는 사형죄에 해당하는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과 탐욕과 나쁜 것으로 가득 차 있었고,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속임수와 악의로 가득 차 있었으며, 수군거리고, 험담하고...... 그런 일을 거듭 행하는 사람들이 죽어 마땅하다.(로마 1:29~32)
마지막 날에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거만하고, 신성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감사하지 않고, 충성스럽지 않고, 비정하고, 합의하려 하지 않고, 중상하고, 자제하지 않고, 사납고, 선을 사랑하지 않고, 배반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고, 교만으로 우쭐대고, 하느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을 사랑하고,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디모데 후 3:1~5)
마지막 구절에 겉으로는 성경을 끼고 교회 나가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이런 사람들을 멀리 하십시오.(디모데 후 3:5ㄴ)
어떤 면에서 이렇게 사는 사람의 수는 천만이지만 가장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이나 이슬람에 속한 신자의 수는 각각 10억이 넘는다고 하지만 그들 중 10만이라도 동일한 생각을 갖지 못합니다.
어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견해는 실제로는 중구난방이죠.
분열이 이 세상의 두드러진 특장입니다. 모두 자기 고집대로 살죠. 하지만 선을 사랑하지 않는 데는 공통입니다.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데는요.
오늘날의 두드러진 현상이지만 창조주를 부인하는 생각은 수천 년 전부터 죽 있어왔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는 분들의 거의 100%도 그럴 것입니다. 실제로는요. 사실 그러기에 이런 곳에 글을 올리거나 보는 것이니까요. ‘거의’라고 하는 것은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랬으면 하는 적어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