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제와 억지
과학계의 난제라고 하는 것은 수두룩합니다. 아니 끝이 없습니다. 그 하나만 예를 들면 지구에 그 많은 물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것이죠.
이런 난제들은 왜 생기는 것이며 그에 대한 설명이 왜 억지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까?
간단합니다. 신성을 철저히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걸으면 팔을 흔들게 됩니다. 힘들게 왜 그렇게 하는 것이냐는 것이죠. 과거에 네 발로 걸어 다녔을 때의 습관이 남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웃는 것입니까? 숲에서 맹수를 만났는데 공격을 받아 잡아먹힐 것으로 기대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에게 웃음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것이죠.
먼지 같은 것들이 중력에 의해 서로 끌어당겨 커질 수 있습니까? 사람조차도 전자 하나 끌어당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통해 덩치가 커져 별이 된다는 것이죠.
자연계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생기는 각종 증상에 대한 해석과 처방도 무지에 의한 것이라 인간 사회에 평화와 풍요가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투덜거림이 사회에 만연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 전쟁이 답이라고 결론 내기도 하는 것이죠.
인간 개인의 주변의 사적인 성격의 현상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억지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반응을 하고 대응을 하게 되죠.
다 로고스(말씀, 원리, 진리, 법칙 ......)를 무시하기 때문이죠.
하느님이 창조했다고 전제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내고자 만물을 탐구하면 현상을 만족스럽게 설명해 주는 답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지성이 올바로 작동을 하는 것이죠.
이를 광신적으로 무시하고는 인간은 어둠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을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헤매다 죽게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