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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11. 2022

왜 학교에 다니는가?

왜 학교에 다니는가?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는 외부에서 강제로 영양분이 공급되죠. 태어나서 상당 기간도 모태에서는 아니지만 먹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되면 “엄마 배고파 파자 사줘” 이처럼 자발적이 되죠. 그리고 음식은 씹어서 먹어야 먹는 즐거움도 느끼고 소화가 잘 되죠. 고기조각이나 과일 조각이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도 꿀꺽 삼킨다면 먹는 것도 고역이고 소화도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삼키는 게 있죠. 바로 약입니다. 그런데 약은 먹는 목적이 다르죠. 또 그렇게 먹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적 양식에 비유되는 지식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아이들이 음식에 대해서 자발적 필요를 느끼듯이 지식에 대한 자발적 필요를 느낍니까? 그리고 그것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배운 것을 바로 소화 시킵니까? 즉 이해하고 기억하고 관련 문제들을 풀 수 있게 됩니까? 그렇지 않다면 공부라는 면에서는 태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들은 성인들이 하라고 하니까 의무감에서 즉 약을 먹듯이 꿀꺽 삼키는 공부를 합니다. 공부가 재미없고 성과도 없죠.     

 

그런데 자신이 필요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공부라면 왜 외부에서 시작시기, 이수기간, 시험시기, 공부하는 시간과 장소를 외부에서 정해줍니까? 근본적인 넌센스입니다. 교육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이죠. 본인의 필요나 상황, 능력에 따라 자연스레 정하면 됩니다.   

   

공부에 진정한 뜻을 둔 학생에게는 학교는 엄청난 장애입니다. 지식교육도 그렇고 인성교육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를 다녔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 놓고 사귈 수 있는 신뢰할만한 인격과 매력 넘치는 사람들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정치 경제 뿐 아니라 교육도 끔찍하게 실패입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합격을 자랑스럽게 여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곳에 배울 게 있다고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원천적인 부조리입니다. 왜 그곳에서 정해준 시간과 장소에서 강의를 들어야 됩니까? 불편하게. 자신이 실제 필요한 지식과 기능이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러한 것을 터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간판이 실제 그 사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학교는 지식과 기예를 함양하는 것 이상의 다른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사회성과 관련해서요. 그러므로 이 글에서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교육제도의 근본적인 모습을 일깨우고 이상적인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http://ida4all.cafe24.com/ida/gnuboard4/bbs/board.php?bo_table=ideal1&wr_i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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