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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11. 2022

날기 위해서는

1등은 의미가 없다

날기 위해서는      


1등은 의미가 없다      


오늘날 사회는 상대 경쟁 체제 하에 있습니다. 동료보다 앞서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상이죠. 머리띠를 불끈 졸라매고 경주에서 기를 쓰고 달리고 있는 모습이죠. 그러나 본질상 1등은 의미가 없습니다. 100m를 14초에 뛰는 사람은 그보다 느린 사람들과의 경주에서는 1등이고 그보다 빠른 사람들과의 경주에서는 꼴찌가 되죠. 다른 분야에서도 1등이라는 것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 거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경기에서도 승패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 게임에서 발휘된 기술의 질은 거의 의미가 없죠.      


그리고 동료보다 앞선다는 것은 삶의 목적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돈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이죠.      


이기는 것이 그렇게 좋고 유익한 것이라면 사랑하는 동료가 그런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더 기쁜 것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죠.      


경쟁이란 자기 자신과 해야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4, 7, 8 인데 자신은 10이어서 1등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100, 1000, 1000으로 계속 개인적인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데 경쟁이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서로 간에 행복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육제도는 학생의 실제 지식과 능력으로 그가 받을 교육 혜택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등수로 정합니다. 상위 몇 프로라든지 몇 등 안에 들어야 원하는 곳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죠. 실제 능력과 자격을 가진 모든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적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다면 동료와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료를 기쁘게 도와줄 수 있죠. 동료가 어떤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전혀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죠.    

 

인간은 절대 무한을 향하여 개인적인 발전을 지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1, 2, 3 ,4 .... 10, 100...... ∞ 과 같이 발전하는 것이 삶의 보람이죠. 3인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은 5이고 7인데 왜 나는 3밖에 안 되는 거야” 하는 열등감을 느낀다든지 “나는 10이나 되네”와 같은 우쭐함을 느끼는 것은 둘 다 비정상적입니다.     

 

이런 면에서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매사에 적용한다면 그는 상대 경쟁 하의 체제에서 열심히 뛰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학습에 있어서도 1/10의 시간과 노력으로 10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죠. 다른 면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는데 왜 끙끙거리면서 애를 씁니다. 이 세상의 그릇된 상대 경쟁체제의 속박에서 벗어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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