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년 전의

by 법칙전달자

만 년 전의


일만 년 전의 전의 진실이란 그것이 어떠하든 간에 혹은 그것을 전혀 모른다 해도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일만 년 후의 진실도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러므로 절실하게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인간의 관심이나 앎의 유무 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일방적으로 작용되고 있죠.


인류의 역사는 약 6,000전에 시작되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가 이루어져 있습니다만 그 외에의 것에 대해서는 극과 극의 견해가 공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주장들보다 비교도 안 되게 확실한 것은 지금의 순간이 일만 년 전의 일 만년 후라는 것입니다.


일 만 년 전에 일 만 년 후의 상태에 대해서 크게 궁금해 하는 어떤 존재가 있었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의 상태이죠. 100억 광년 떨어진 곳의 상태가 궁금하다면 그곳에서 100억 광년 떨어진 곳이 바로 여기이죠.


지금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 만 년 후에 대해서는 만 년 전의 그 시간, 그곳이죠.


인간의 의식의 연속성에 대해서도 극과 극의 주장들이 존재하고 있죠. 무시무종의 윤회설에 의하면 현재의 자신은 영원 전부터 있던 존재로서 윤회의 쳇바퀴 속에 영원 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만 년 전에도 존재하고 있었고 만년 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 그처럼 신비하고 너무나 큰 신성이 담겨 있어 어떤 시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그런 주장이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대개 사람들은 ‘나는 내가 어떤 시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시점 이후에 이 존재의 세계에서 영원히 소멸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합니다. 심리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의 생각, 의식은 자유, 자유분방하지만 실제로 관련 진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현재 이 순간의 삶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죠.


음악과 관련한다면 사실 100년 전의 노래도 거의 녹음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200년 전의 노래라면 아무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녹음이라는 소리의 저장 수단을 발명하였죠. 영상도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발명된 후의 것은 그 기기를 사용하여 녹화한 것이라면 재생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아니라면 그것들이 전혀 저장되지 않은 것입니까? 인간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지능이 있다면 그 근원은요. 혹은 지난 모든 과거는 자동 저장되어 있습니까? 아카식 레코드가 있는 것입니까? 사건의 지평선 혹은 홀로그램이론의 2차원평면에 저장되는 것입니까?


미래마저 저장되어 있다고 주장되죠. 그리고 슬그머니 미래의 존재 가능성과도 연계하죠.


확실히 알 수 없는, 그러므로 진실인지 확인할 수 없는, 인간의 상상의 산물에 대해 시간 낭비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창조주만이 관련 진실을 알 수 있죠.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도록 옮겨졌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옮기셨기 때문에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 그(아브라함)는 참된 기초가 있는 도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도시를 설계하고 건축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 그들(믿음을 나타낸 자들)을 위해 도시를 준비해 두셨습니다.(히브리 11)


하느님이 에녹을 옮긴 곳은 그 시대의 다른 곳이 아니라 미래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관점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과거이죠. 그것을 아브라함이나 모세 같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릴 수 없는 왕국을 받게 되어 있으니 경건한 두려움과 외경심을 가지고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신성한 봉사를 드립시다. 우리 하느님은 태워 없애는 불이십니다.(히브리 12)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결혼의 침상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는 자와 간음하는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방식에서 돈을 사랑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우리는 이곳에 영속하는 도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장차 올 도시를 진지하게 찾고 있습니다.(히브리 13)


인간은 피조물이며 그 한계를 인식하여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고 전 글에서 밝힌 두 가지, 숭배와 성에 관한 기본 원칙들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범하는 자들은 하느님이라는 불에 의해 태워져서 소멸됩니다.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 희망이 있는 것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장차 올 도시이지만 창조주께서는 이미 세워 놓은 도시를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만년 후에도, 억년 후에도 아니, 영원히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