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려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원칙에 따라 인간은 주려고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받기만 하는 삶은 우울한 것이기도 하죠.
그런데 주려면 그것이 반드시 자신에게 있어야 하죠. 누군가에게 10만원을 주려면 그 이상이 자신에게 있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빌려서 준다는 것은 논외입니다.
주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고 노래를 불러 주는 것일 수도 있죠.
아무튼 자신이 알고 있는 것, 부를 수 있는 것이어야만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죠. 교사가 자신이 모르는 것을 학생에게 가르쳐서 알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또한 부모라면 자녀가 좋은 습관이나 태도, 성품을 갖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렇게 되어있지 않는 것을 자녀에게 있게 할 수 있습니까? 아이는 말은 잘 안 들어도 흉내는 잘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신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말로는 이렇게 저렇게 되어야 하거나 하라고 할지 모르지만 부모가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면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을 것이고 자녀가 그렇게 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자신에게 없거나 자신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누군가에게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또 주는 것 중에서 주면 그만큼 자신에게 줄어드는 물질적인 것이 있지만 아무리 주어도 자신에게 그것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죠. 지식이나 특성 같은 것들입니다.
노래를 아무리 많이 불러주어도 그 노래를 더 이상 부를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타인에게 얼마든지 얻어도 부정적인 감정은 생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뻔뻔스럽게 부모에게도 반복적으로 손을 내밀어 돈을 뜯어낼 수 있지만 죄책감 같은 것이 생길 수 있죠.
그런데 누군가에게 재미있거나 교훈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면 그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 수 있죠.
어떤 가수의 노래를 하루 종일 들어도 그 가수에게 조금도 손해를 끼치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 가수가 알면 오히려 기뻐하는 것이 될 수 있죠.
사실 그 가수에게 뭔가를 받는 것이긴 하는 것인데요.
그 노래를 그렇게 매혹적으로 불러주지 않았다면 그러한 행복을 하루 종일 느끼는 일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면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가수가 지닌 탤런트라는 것도 부여받은 것일 수 있죠.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면서 자신도 보람을 느끼도록요.
사실 인간이 지닌 재능 중에서 누군가엔가 혹은 그 무엇으로부터 전해받지 않는 것은 없을 수 있습니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받은 것일 수 있죠. 그러므로 그것을 즐기는 사람 역시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에 대해 애석해하겠지만 그래도 있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겸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아직 그래도 호흡이라는 것을 하면서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것에 대해서도요.
그러나 어떤 인간도 동료인간에게 건강이나 젊음, 생명을 나누어 줄 수는 없습니다. 자신도 늙고 병들어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노래를 잘 불러도 그것은 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누군가에게 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풍성하게 넘쳐 나눠줄 수 있는 근원에게라면 그것에서는 그것을 얻을 수 있죠. 아무리 나누어줘도 자신에게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그런 것이니까요. 사랑도 아무리 사랑해도 줄어들지 않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는 법칙을 만든 그 근원에게, 아무리 나누어주어도 조금도 부족해지지 않는 것을 만든 그 근원에게 건강과 젊음 그리고 생명을 달라고 왜 요청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납득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사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