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by 법칙전달자

의식주


생존과 행복을 위한 필수이죠. 그런데 인간은 살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못합니다,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3)


여기서 필요를 느낀다는 것은 어원적으로 구걸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음식, 영적인 의복, 영적인 주거지가 없음을 느끼고 겸손한 태도로 믿음을 가지고 끈기 있게 구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페니키아 여인이 예수에게 한 구걸(?)이 연상됩니다.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티레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그런데 그 지방에서 어떤 페니키아 여자가 와서 “주여, ‘다윗의 아들’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악귀가 심하게 들렸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나 그분은 그 여자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제자들이 와서 그분에게 요청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계속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만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분에게 와서 경배하며 “주여,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셨다. “자녀의 빵을 집어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여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주여. 하지만 강아지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여자여, 당신의 믿음이 큽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될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마태 15:21~28)


예수께서는 처음에 대응도 하지 않았고 거절하시면서 심지어 그녀를 강아지에 빗대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끈기 있게 요청(구걸)하였습니다. 결국 필요한 것을 얻었습니다.


영적인 의식주가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구걸에 해당하는 행동을 해서라고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영적인 의식주라는 개념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필요를 느낄 리가 없습니다.


돈에 대한 필요의 1/100도 느끼지 못하죠.


이 글도 그런 점에 대한 소개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음식, 영적인 의복, 영적인 주거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라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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