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제지?
어떤 경우든 인간은 그 행동의 대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행동하는 과정에서는 인간들끼리 서로 제지를 하지 않는 한 우주에서 그 무엇도 제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부당하게 제지하는 것은 물론 법칙위반이어서 그 행동 역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아무도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는 지엄한 법칙입니다.
법칙의 정의는 “의식 있는 존재의 행동의 결과를 관장하는 우주적 영적 법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동의 과정에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그 행동이 조금이라고 정당성이 있다거나 참작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거나 변명의 구실이 조금이라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럴 거라면 좀 말려주어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타당성이 생기지 않습니다.
창조주는 그분의 지극히 사랑하는 피조물이라도 조금도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는 행동을 완료할 때까지 가인은 그의 동생을 죽이는 행동을 끝낼 때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솔로몬도 모세도 그 누구도 그들의 불충한 행동을 다 끝낼 때까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습니다. 모두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죠. 그런데 어떤 행동들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나 솔로몬이 이방신에게 절을 한 것이나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내게 한 것이나. 그런데도 그들은 그 대가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창조주는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이 보는 가운데 그분이 이 우주를 운영하기 위해 마련한 법을 반드시 준수합니다.
인간은 어떤 언행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그 어떤 우주의 기운도 천사도 제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정당성이 조금이라도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본이 되고 유익이 되는 행동인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일 뿐입니다.
창조의 법칙에 무지한 인간의 관점인데 그러한 무지는 변명의 여지가 되지 않습니다. 이미 공식적이고 반복적으로 포고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의적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아서 모르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들은 자신들이 죽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완전히 소멸됩니다.
지금 그처럼 법을 무시하고 잠깐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바꾸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반드시 생명을 누립니다. 그 지엄한 법칙에 따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