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흉한
불의하게 성적으로 보는 눈길, 성적으로 움직이는 손길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만 그 표현 안에 불의, 부도덕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 친 딸인 경우 아무렇게나 만지고 어떤 시선으로 보아도 서로 간에 전혀 성적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무슨 행사장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완전 몸을 맡긴 채로 기대어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몸집도 좀 되어 힘이 들 텐데 그 아버지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날 안아주는 것이 왜 이렇게 안정감이 없어? 이제 컸다고 변심한 거 아니야?”
“야, 나도 이제 힘들다. 그리고 너 이제 시집갈 나이 됐잖아. 남자 친구는 있냐?”
“글세... 아빠 반만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 믿을 만한 사람은 친아빠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이쁘다고 자기에게 뽀뽀 세례를 퍼부은 친오빠라도 그렇습니다, 성인이 되어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경우라도 성적으로 느끼지 않죠.
배우자 이외의 남녀 간의 일반적인 인간관계는 이와 같아야 합니다.
응큼, 음흉에 적용되는 마음의 상태나 정신의 상상, 눈빛, 손길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의 최종적인 해악은 자기 자신에게도 의외로 큰 것일 수 있습니다.
성적 행복은 거룩하고 신성하다 할 수 있는 창조주의 선물입니다.
성적인 면으로 생각과 마음, 몸을 멋모르고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것은 영구적인 해를 입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