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은 있어도
오리
뜻은 있어도
숲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들은 비둘기, 까치, 까마귀 그리고 이름 모르는 새들, 청설모, 이따금 다람쥐, 뱀, 멧돼지 등등 그래도 그것들은 볼 수 있고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어느 정도의 감정,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나무와 풀, 꽃들은요? 자신의 자태를 볼 수 있습니까? 돌들은 자신의 우아하게 푸른빛 이끼로 덮인 모습을 불 수 있습니까? 흐르는 물은 자신이 흐르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그 물에는 쌍으로 혹은 홀로 헤엄치는 청둥오리들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인간 중심원리에 따라 그것들은 인간을 위하여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죠.
인간은 천부적인 호기심이 있고 사람에 따라 섬세하고 예리하고 활발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물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이죠. 어떻게, 왜 생긴 것인지도요. 그러나 알기는 어렵습니다. 매우 매우 어렵습니다. 겨우 겨우 알아낸 것들이 지금까지 누적된 지식들이죠. 그 발견자들은 큰 공을 세운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에는 공상적인 것 같은 욕망을 갖기도 합니다.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요. 그리고 구체적으로 뜻을 세우기도 합니다. 비행기 같은 비행기구들을 결국 만들어 내기도 했죠.
그렇게 하는 것은 단지 알아내는 것보다 훨씬 어렵죠.
사실 인간은 전지와 전능을 지향합니다. 또 지식과 능력을 쌓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죠.
뭐든지 정확히 알고 싶고 잘하고 싶죠. 이름다워지고 싶기고 하고요.
그러나 모든 면에서 현실적 한계에 봉착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음의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별로 있습니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게 되죠.
본래의 삶은 아닙니다.
법칙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한 필연적인 거스름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죠.
결국은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