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겨운
역겨운 것에 역겨움을 느끼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 대상이나 성질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역겹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어떤 단어들은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 혹은 일본어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쓰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말을 사랑해야 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비행기도 ‘낱틀’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민족정신, 조상의 얼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배타적인 단합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것이죠.
그 본질은 역겹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생각을 부정하고 이상적이고 완전한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야죠. ‘나’를 부인하고 ‘우리’를 버려야 하죠.
그러나 이런 정도는 역겨운 것들 중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들의 대부분의 의식들은 역겹기 짝이 없는 것들입니다. 자신도 남도 잘 그렇게 느끼지 못하죠.
그게 왜 거짓되고 악하고 추하고 더러운 것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성스럽게 느낍니다. 전쟁터에서 살인하는 것도 사랑과 믿음을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행위로 부추기고 있는 것이죠. 종교에서 그런 군가들을 만들어 부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죠. 한국 군가 중에서도 그 가사의 한 부분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대목이 있죠.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의 전력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대에는 각 종교들의 집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역겨운 것인 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인간들은 어떻게 보면 똥을 먹고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차반이라고 하는 것이죠. 예전에는 아이가 그냥 길바닥에서 대변을 보면 개를 불러서 먹게 했습니다. 소위 개차반이라고 하는 것이죠.
인간들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이 비유적으로 흡입하는 것은 개차반입니다. 개보다 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