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필연

by 법칙전달자

어떤 필연


물량이 풍부히 공급된다면 인간들끼리 싸우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런데 식량생산부터 관련노동이 고달픈 것이라면 가능하면 그런 노동은 피하려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착취라는 시스템이 생길 수 있는 것이죠. 힘 있는 자는 노동을 안 하고 타인의 노동과 그 생산을 감독 관리하면서 그 수확을 취하는 것이죠. 세금을 내라고 하게 된 것이죠. 식량생산뿐 아니라 도구를 만드는 노동도 큰 비중이었죠.


그런데 첫 인간 부부가 범죄 한 후로부터 그 노동이 고달픈 것이 되었습니다. 천사와 인간의 교배종인 네피림 소위 거인들이 그런 역할을 하였을 수 있죠. 또 물질뿐 아니라 여인들의 미모가 우열이 차이가 있다면 그로 인한 싸움도 예상할 수 있죠.


인간 사회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이 된 것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과정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의 정당성도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회는 싹쓸이되었죠. 지금 사회도 곧 그렇게 됩니다.

현 악한 상태를 정당화화는 어떤 이론이나 철학도 조금도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세상의 악에 연루되어 사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살처분될 뿐입니다. 악성종양과 같은 존재일 뿐인 것입니다. 99% 이상의 인류가 그러하기 때문에 세상은 종양덩어리이죠. 건전한 부분이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죄다 불의에 연루되어 있죠.


그런 사회에서 나와서 영적 낙원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 당시에는 예수의 제자들의 사회가 그러하였고 그들을 제외한 유대인 사회는 곧 로마에 멸망될 것이었죠.


제자들에게는 로마군이 첫 번째 포위를 풀 때 그 제자들에게 산으로 도피하라고 했습니다. 기원 66년이 그럴 기회가 주어졌죠. 그때 예수의 말씀에 따라 그 당시 악한 유대인 사물의 제도에서 나와 도피한 사람들은 기원 70년의 로마군의 공격에서 생존하였습니다.


지금은 아직 그런 기회가 있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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