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토론
한 주제에 대해 각 정파의 대표자들이 나와 토론을 하는 경우 물론 생각이 다릅니다. 같은 정파의 사람들도 “내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라고 하면서 이견을 표하는 경우가 있고 10인 10색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언어도 같고 교육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도 이와 같은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성서는 약 1,600년간의 기간 동안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40명 정도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모두 66권입니다. 그런데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정도로 온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배후에서 계획적으로 조정한 것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성서 자체는 그렇다고 명시합니다. 이점 하나만 보더라도 성서는 인간의 상상에서 꾸며낸 것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물론 다른 모든 면으로도 성서가 그렇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통치와 정치의 영역은 애초에 인간에게 주어진 영역이 아닙니다. 인간이 정답을 알 수 없는 영역이죠. 그러므로 역사상 변화해왔습니다. 같은 시대에도 각양각색이죠. 그것은 기초 없이 세워진 역삼각형 건물과 같습니다. 팽이와 같죠. 회전하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을 뿐입니다. 그것을 회전시키는 근원이 종말에 다가왔고 팽이는 쓰러지기 직전처럼 휘청거리고 있죠.
학문계는 진리의 영역이며 유일성이 지배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죠. 진리로 밝혀진 것은 시공을 통해 유일하며 영원하고 절대적입니다. 과학이나 수학 시간에 배우는 대부분이 그러하며 일방적으로 전수되는 것들입니다. 토론의 여지가 없는 것들입니다. 2+3은 5로 유일하며 다른 것들은 다 틀린 것이죠. 물의 분자식은 H2O이며 이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다 틀린 것입니다. 반면 예술계는 다양성이 지배합니다. 같은 노래라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죠.
철학은 부당한 의심에서 출발한 본질상 모순된 것으로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소위 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 경제 철학입니다. 정책이나 제도도 그것을 바탕으로 정하니 철학적인 것이 되고 늘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론에서의 10인 10색은 당연한 것이고 모두 틀린 것이죠.
반면에 성서의 사상은 수천 년간 변함이 없지만 조간신문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훈을 적용하는 사람들끼리는 비이기적인 사랑으로 온전히 연합하게 하며 현재에도 영적인 평화와 기쁨 가운데 살아가게 합니다. 진리가 갖는 힘이고 그 진리는 결코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