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
理(이치), 性(성질), 덕(德), 도(道) ......등등
어떤 단일한자어에는 매우 함축성 있는 의미, 개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앞뒤로 여러 글자, 개념들과 결합하여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며 이는 한자권 영역에 있는 지식 추구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며 요긴합니다. 그것 없이는 학문이 되지 않죠.
한자는 차이나티베트어족에 속하죠. 인도유렵어족에 속하는 언어에서는 그리스라틴어 어원의 어휘들이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언어란 역시 진화의 산물이 전혀 아닙니다. 꿀꿀 거리는 옹알이 같은 소리에서 진화된 것이 아닙니다. 언어체계는 고대어가 오히려 복잡 정교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화되었습니다. 한글도 고어가 문법이나 어휘체계가 더 복잡 섬세했죠.
지금은 인류가 수천 개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원래는 10개 정도의 언어였다고 합니다. 인류의 시초에는 약 2,000년간 한 언어를 사용하였지만 갑자기 10개 정도의 이질적인 언어로 분화되었죠. 성서는 창조주가 그렇게 되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만족스러운 설명은 없습니다.
하나의 심오한 개념을 갖는 추상어들도 창조주에 의해 인간 정신에 입력된 것입니다. 문자는 인간들이 고안했을 것입니다. 한글이 그러하듯이요.
‘복(福)’도 그러합니다. 축복(祝福), 복지(福祉), 행복(幸福) 등등과 같이 다른 글자와 결합하여 다양하게 쓰이죠. “복도 많다.”와 같이 단일글자 그대로도 많이 쓰입니다.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한 후 맨 먼저 인간에게 한 말은 축복입니다. 복이 있기를, 복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이죠. 삶의 과정과 결과가 행복이기를 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복, 행복임을 직접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먹는 행복도 비중이 크죠.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만족할 만큼 먹어도 된다. (창 2:16)
먹는 것에 관한 원칙은 ‘만족할 만큼’입니다.
성과 관련해서는
젊어서 얻은 아내와 함께 기뻐하여라. 언제나 그의 젖가슴으로 만족하고 늘 그의 사랑에 매료되어라.(잠언 5 :18,19)
여기에 매료된다고 번역한 단어의 어원적 의미는 황홀경, 절정감, 오르가슴과 관련 있다고도 합니다. 언제나 늘 그런 식으로 행복하라는 것이 원칙이죠.
그런데
여호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만족할 만큼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어서는 안 된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 2:16,17)
행복하라고 명령하신 하느님이 선악을 알게 되는 것은 금지한 것이죠.
관련 연구가들은 뇌의 목적이 행복이며 앎은 아니라고 합니다. 논리적으로는 인간이 선악을 알 수 없음이 증명되어 있죠.
인간의 뇌는 영적, 도덕적 주제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시도인 철학과 종교는 무지의 소산입니다.
인간의 신체가 팔을 휘저어 하늘을 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면서 팔을 휘저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시도가 파멸적인 것처럼 그런 파멸적인 시도를 하는 것이 철학과 종교이며 그 결과 인류는 지금처럼 파멸적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물론이고 인간 개개인도 파멸적인 존재, 멸성이 되었죠.
인간의 복, 행복이라는 것은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 전제하에서만 누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도 그런 전제하에서만 지속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창조의 목적이죠. 인간에게 준 자유는 절대적이라 그런 시도를 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대비하여 창조가 실패가 되지 않게 마련한 것이 대속과 하늘왕국의 천년통치입니다.
인간이 불행하게 되지 않게, 죽지 않도록 마련한 것이죠.
성서는 그런 소식을 전하기 위해 쓰인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의 최상의 행복을 영원히 누리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