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by 법칙전달자

휴식


창조주의 어떤 처사들은 꼭 창조주의 속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눈높이 맞춤이 목적일 수 있습니다.


어떤 완전한 사람이 자신이 문제가 많은 것으로 피력한다 해도 “저렇게 문제가 많아도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면 상황반전이 가능하다.”는 희망과 격려, 용기를 주기 위함일 수 있다는 것이죠.


속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교육적 책략,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죠. 푹 쓰러져서 시체처럼 되는 일을 매일 많은 시간 치러야 하죠. 아니, 달콤한 잠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자는 동안에도 피돌림이 원활하도록 자동적으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게 되죠.


몸이 생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어 에너지 재충전을 위한 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도 인간의 한계죠. 그런데 모든 의식 있는 피조물의 한계입니까? 영적 몸을 지니고 있는 천사나 귀신들도 그처럼 쉬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까? 그건 모릅니다.


쉼은 무기력의 순간이죠. 특히 잠은요. 잠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싸우기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잠을 자야 하고 그때 공격을 받으면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죠. 여포나 장비도 결국 그렇게 되어 죽음을 당하죠.


인간이 그처럼 매일 완전히 무능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겸허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그러면 창조주는요? 그분도 여섯 단위의 기간 동안 창조활동을 하고 일곱 번째 기간에 안식하시고 지금도 그 안식기간이죠. 6,000년이 넘게요.


인간에게도 6일 일하고 하루 쉬라고 엄명을 내리고 있죠. 안식일에 일하면 돌에 맞아 죽었죠. 안식년 그리고 희년도 있었습니다.


그분이 정말로 인간처럼 쉴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눈높이용입니까?


창조주는 단지 지구창조와 관련하여 안식을 선언한 것뿐입니다. 쉴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개입이 없어도 그 기간 동안 창조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시기 위함일 수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계속 일하시니 나도 계속 일합니다.—요한 5:17. 예수의 말씀이죠.


하느님은 인간들처럼 일을 중단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것은 감당이 안 되는 논리적 모순에 봉착하여 불가능합니다.


하느님의 안식과 관련된 교훈을 히브리 4장에서 설명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중노동에서 인식을 취할 수 있게 인도해 내었죠.


예수의 제자들도 각자의 직업에서 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예수도 목수로서의 일을 그만두었죠.


그렇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쉬고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순수한 영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였죠. 돈 버는 일이 아니라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서는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생계를 위한 일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자신의 일에서 쉬고 하느님의 안식에 동참하는 사람은 생필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마음의 쉼입니다. 세속적인 걱정, 경제나 건강에 대한 걱정, 불안정한 정세에 대한 걱정 등에서 안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세상은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지쳐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정한 휴식, 안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령한 새로운 에너지, 참된 위안과 격려가 필요하죠.


고달픈 인생입니다. 그러한 필요를 진지하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참 안식을 청구하여 누릴 수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떤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