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유에
모든 만물에는 그 주어진 조건들이 있습니다. 인간도 인간으로서 주어진 무수한 조건들이 있죠. 인간은 성적으로 남성이나 여성으로 태어납니다. 인간으로서의 공통적인 조건과 함께 그 본유의 성적인 조건이 추가됩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제한이기도 하고 축복이기도 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조건도 성적인 조건도 그렇습니다. 거기에다 나중에 회복되겠지만 불순종으로 추가된 저주스러운 조건들도 있는데 본유의 조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작용합니다.
한 가지 면만 살펴보면
그분이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임신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다.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를 지배할 것이다.”(창 3:16)
생리적인 번거로움, 출산고통과 심리적인 남성 의존성이 그것입니다. 크게 더할 것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원래도 대소변의 배설과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약간의 고통은 있었을 것입니다만 지금처럼 비명을 지르는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죠.
심리적인 집착도나 의존도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그것이 더 강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또 여성이 남성에 부속되는 것이 다소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일찍 죽고 쉽게 죽죠. 성비가 균형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부일처제가 엄격히 적용된다면 피치 못하게 여인들이 독신으로 죽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애처로운 상황이기도 해서 일부다처제는 여인에 대한 배려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일 수 있습니다. 본연의 것은 결코 아니고 원래대로 회복될 것이죠. 한국에서도 일부다처는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남성들의 딸들이, 누이들이 그런 상황인 것은 가슴 아픈 현상이기도 합니다. 본래적인 남녀관계를 정상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죠. 이러한 면과 상관없이 남녀의 고유의 성적 특징들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것들을 비롯해서요. 얼굴, 몸 전체, 목소리, 특히 성기 관련이 그러하죠.
남자는 아래에 여자는 가슴에 덜렁거리는 것을 달고 있는 상태이죠. 쩝쩝거리고 먹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배설이 번거롭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그러나 정상적이라면 축복이 되는 것이죠. 특히 서로에게요.
인간은, 남성과 여성은 각각 그 본유의 성적인 특징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남성도 여성과 다른 면으로 죄 때문에 후성적으로 첨가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먹어서는 안 된다’고 내가 명령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므로 너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는다. 너는 평생토록 고통 속에서 땅의 소출을 먹을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낼 것이며, 너는 들의 식물을 먹어야 할 것이다.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것이며 결국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네가 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 3:17~19)
자연 상태의 땅은 풍부한 먹을거리를 산출하지 않습니다. 들이나 숲이나 식용야채나 과일이 결코 풍성하지 않습니다. 남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달갑지 않은 직업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이라고 할 정도의 삶의 주요 부담이죠.
그런 고생과 결국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남녀공통입니다.
인간은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환경적으로 아무도 그 본래의 정상적이고 이상적이고 완전한 상태를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 창조의 목적이 성취된 상태가 아닙니다. 지금이라면 창조의 실패인 것이죠. 그러나 창조의 안식이 끝나기 전에 그 목적은 성취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에게, 우리가 왕국과 자신의 하느님 아버지의 제사장이 되게 해 주신 분에게 영광과 위력이 영원히 있기를 바랍니다.(계시 1:5,6)
대속을 통해 그 원죄에서 해방된 일부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천적 정부를 구성하여 왕 겸 제사장으로 1,000년을 통치함으로써 그렇게 될 것입니다. (계시 5:10, 20:6)
제사장으로서의 통치를 통해 인간의 완전성을 회복하고 왕으로서의 통치를 통해 지구를 낙원으로 완성하는 것이죠. 영적 낙원은 이미 형성되어 있고 하늘 정부는 이미 형성되어 있죠.
인간은 자유로 저주를 선택하여 마치 원래 그러한 것처럼 많은 부정적인 제한 하에 있지만 또 그 자유의 선택을 통해 그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본유의 남녀관계란 어떤 것일까요? 다른 회복도 중요하지만 여성특유의 심리적 취약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남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그 그지없이 사랑하는 딸들과 누이들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