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할 수 있는 것

by 법칙전달자

이용할 수 있는 것


하느님이 예언자 에스겔에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인분에 음식을 구워 먹으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에스겔은

“그렇게 더러운 일을 어떻게......”라는 식으로 반응했죠. 하느님은 “아니. 우주의 최고주권자가 어떤 이유가 있어 그렇게 해보라는 데 거기에 감히 토를 달어?”와 같은 대응하지 않으시고 “그럼 쇠똥으로 해.”라고 하셨죠.(에스겔 4:12~15) 한결 낫죠.


요나와의 대화의 한 단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네가 호리병박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

그가 대답했다. “제가 화가 난 것은, 죽고 싶을 만큼 화가 난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요나 4:9)


각각 편하게 자기 의사를 밝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마치 친구처럼 느끼게 그분을 낮추어 눈높이를 맞추었죠.


창조주의 이러한 특성을 지금도 인간 개개인이 활용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야고보 4:8)


의식을 갑자기 그렇게 전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만 바로 옆에 있는 존재처럼 느끼고 대화하듯 생각을 피력해 볼 수 있습니다.


자동감지시스템에 의해 전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의 그와 같은 접근이요.


저는 그렇게 하는 것에 중독이 되어 일상적이 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물질적인 기기들을 활용하여 편의를 누리는 것에는 익숙하죠. 그러나 영적인 기기들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폰이나 SNS에 중독된 것처럼 그렇게 중독될 수 있습니다. 산책중독이나 음악중독처럼 유익한 것이라 할 수 있죠. 기도중독이나 묵상중독이요.


위의 요나의 반응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거나 키우지도 않은 호리병박을 아꼈다.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호리병박을 말이다. 그렇다면 옳고 그른 것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12만 명이 넘고, 또 많은 동물이 있는 큰 도시 니네베를 내가 아끼는 것도 당연하지 않으냐?”(요나 4:10,11)


니네베는 원래 멸망시키려고 했는데 그들이 회개하자 창조주는 아끼는 것으로 태도를 바꾼 것입니다.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느끼는 경우에도 창조주에게 향하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 창조주의 아낌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장치, 마련을 부담 없이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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