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상
세상은 사람이 거주하는 곳, 인류 전체를 의미할 수 있고 그 체제나 제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창조주로부터 소외된 인간 사회, 그분의 승인받은 개인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인간 사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멸망된다고 할 때는 이를 의미하죠.
어떤 의미인지는 문맥을 통해 알 수 있게 됩니다. 후자의 세상인 경우 단편적으로 어떤 의미 있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관계를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원칙에 입각한 행동을 할 뿐이지 마음을 두거나 애착을 갖게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와 합당한 개인적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그 세상입니다. 피상적으로는 어떤 미덕도, 어떤 재능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관계를 가져도 괜찮아 보이는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선악과가 보기도 좋고 맛도 있어 보여도 접근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지는 것은 물론이고요. 먹지 말아야 된다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세상에 마음 붙이고 살 것이 아니라면 그런 식의 태도를 가져야죠.
배우자가 아니라면 성적으로 어떤 관심을 갖거나 접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관계를 갖지 않을 것이라면요.
그 세상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직업적인 활동을 비롯하여 여러 관련된 행동을 하게 되고 세상의 경제나 법, 제도를 이용하기도 해야 하겠지만 관건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사도바울도 세상을 최대한 이용하려 하지는 말라고 한 정도이고 그는 그의 로마시민권을 이용하여 세상의 법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천막거래 같은 경제적인 거래도 하였죠.
그러나 마음의 애착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접근하기는 했어도요.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그 밤에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 두 여자가 같은 맷돌을 갈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입니다.(누가 17:34,35)
같은 행동을 해도 그의 마음이 온전히 하늘왕국에 희망을 두고 있느냐 아니냐가 관건이죠.
세상이 조금이라도 살만한 곳이라고 느끼는 여부가 있느냐 하는 것이죠. 조금이라도 마음이 나뉘어 있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애서 소위 마음을 온전히 하늘왕국에 희망을 두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분이 한분도 없을 것이라는 점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글을 이처럼 올리는 것 자체가 일종의 세속적인 활동일 수 있죠. 그러나 어떤 비순수한 애착이나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원칙에 의해 인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법칙을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인간이 진정한 행복과 생명을 위하여 유일하게 해야 하는, 알고 순응해야 할 그 법칙들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