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

by 법칙전달자

까칠


모든 불리한 조건들을 한꺼번에 가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쁘기라도 하면”이라는 말도 있는데 다른 건 다 아니어도 그렇기만 하다면 그처럼 무시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일 수 있죠.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얻지 못할 것을 본인도 잘 알고 있죠. 성격이 사납고 거칠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인간의 조건들의 우열의 폭은 대단히 넓습니다. 선천적인 후천적인 영향이 겹쳐진 것이죠.


사랑과 공의의 하느님의 작품이라고 할 때 납득이 잘 안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성서필자들에게도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그분에게 물었다. “랍비, 누가 죄를 지었기에 이 사람이 눈먼 채로 태어났습니까? 이 사람입니까, 아니면 부모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의 부모도 아닙니다. 다만 그를 통해 하느님의 일이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누가 9:1~3)


도공이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단 말입니까? 하느님께서 자신의 진노를 나타내 보이고 능력을 알리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면서도(로마 9:21,22)


사실 인간에게 주어진 온전히 선천적인 조건이 열등한 것도 창조주의 책임은 아닙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죠. 근본적으로는 첫, 인간 부부 더 근본적으로는 마귀가 원인일 수 있죠.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어떠하다 해도 까칠함은 결코 정당할 수 없습니다. 온유와 겸손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태도와 성격이어야 합니다.


진노 즉 불리한 심판이나 평가의 대상들은 오히려 조건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입니다.

멸시의 대상들이 그 점에 있어 오히려 유리할 수 있습니다.


외적인 조건의 멸시받을 만함이 내면적으로도 악영향을 받아 스스로 불리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의 책임을 다른 것에 돌릴 수는 없습니다.


창조주의 능력은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우월하다는 조건들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게 변화시킴으로써 나타납니다.


하느님의 일이 그렇게 나타나도록 일시적으로 그런 상황이 허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타남은 우선 영적인 면으로 분명히 성취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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