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의 과시는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있으며 세상의 욕망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요한1서 2:15~17)
단지 사랑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습니다. 사랑은 그 안에 선악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무엇을 사랑하라, 어떻게 사랑하라.”는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사랑하지 말라는 원칙도 있죠. 미움도 그렇습니다. “미워하지 말라는 원칙.”은 없습니다. 무엇을 미워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원칙이 있는 것이죠.
이를 모르면 잠시 존재하다가 지나가는 존재가 될 뿐입니다.
위 구절에서 아버지와 세상이 댓구되어 있죠. 아버지는 창조주를 의미하고 세상은 그분으로부터 소외된 영역을 의미하죠. 그 안에 있는 것들은 창주주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제도, 문화들이 그러하죠. 정치, 종교, 법률 등등. 어둠의 세상이고 무지와 거짓과 악의 세상이죠.
그중에는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의 과시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 따라 살죠.
‘육체의 욕망’이란 ‘신체의 필요’와는 전혀 다릅니다. 후자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필수이지만 전자는 악하고 더러운 것으로서 고통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성적인 것과 관련하자면 전자는 성적 부도덕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금해 온 것들이죠.
하와는 눈으로 선악과를 그릇되게 보는 것으로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의 남편도 그렇게 되게 만들었죠.
천사들도 인간 여자들을 그렇게 보아 은총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음란물을 보려 하는 것도 눈의 욕망과 관련되죠.
좋은 집이나 자동차 등의 과시는 일상적이 되었지만 필연적으로 파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99% 이상은 그렇게 살죠. 곧 소멸됩니다. 그걸 추구하느라 서로 싸우기 때문이죠. 세상을 더럽히고 망가트리기 때문입니다.
결코 사랑스럽지 않은 것, 구역질 나는 것을 사랑하는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