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조건, 경험, 감정, 생각 등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위문장의 생각은 저의 생각인 것입니까?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사견(私見)이라면 틀린 생각이어서 저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첫 문장이 보편성이 있는 것이라면 저는 단지 전달한 것입니다. 상기(想起)를 위해 언급한 것뿐이죠.
말하는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선언을 말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봉사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에 의존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베전 4:11)
인간의 언행에 관한 원칙이죠. 원칙에서 벗어난 것은 해롭습니다.
여러분은 거짓을 버렸으므로 각자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썩은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오직 필요에 따라 세워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도록 하십시오.(에베소 4:25,29)
인간은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참된 말, 올바른 말, 선한 말만을 해야 합니다. 행동도 그와 일치한 것만을 해야 하죠. 무엇이 그러한 것인지는 인간이 임의로 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인간들의 언행에 이러한 원칙들이 반영되어 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죠.
당신이 하느님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형주를 지고 계속 나를 따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고,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사람이 자기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습니까?(마태 16:23~26)
사람이 잠깐 살고 영원히 소멸되려면 이러한 원칙을 따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있죠.
그러나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 생각, 감정, 욕망, 습관, 성격, 태도, 목표 등등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에는 고통이 따를 수 있지만 악하고 거짓된 것을 버리는데 그 정도의 고통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죠.
자신이 하는 말, 쓰는 글, 하는 행동이 사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유일한 진리를 표현하고 행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자유를 제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라고 크게 잘못 느낄 수 있으나 오히려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죠. 자유를 누리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실제로는 노예상태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행복하고 평화롭고 풍요로워야 하는데 불행하고 불안하고 빈핍하면서 자유를 누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속박상태이죠.
세상에 참 자유가 있습니까? 사르트르는 사람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할 정도로 인간의 자유는 자신과 남에게 저주로 작용합니다. 세상과 사람의 모습이죠.
자유는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에게는 자유도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그가 발산하는 것은 썩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조건, 경험, 감정, 생각 등을 그것을 가치 있다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고 알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치 있는 경우는 보편적인 원칙과 일치해서 그 진리의 가치를 구체적이고 인상적으로 전달하는데 필요한 경우입니다. 예나 비유와 같은 것이죠.
사람은 자신의 사적인 모든 것이 진리와 사랑을 구현하기 위한 것임을 인식하고 그런 목적으로 사용할 때 비로써 그것이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