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표출
환난에 처한 이 모순된 세상에서 인간은 정상적인 모습이 될 수 없습니다. 매력 넘치고 아름답기만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동료를 평가의 시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소간 심각한 인격적 결함과 불미스러운 이력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의 형태에서 딱딱하거나 뾰족 뾰족한 면들이 있어 접촉하면 상처를 입을 수도 있죠. 물론 자신이 물이나 솜 혹은 밀가루 반죽과 같은 인간이 되면 문제없습니다. 상대의 결함으로 언짢아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죠. 간과하거나 사랑으로 감수해야 하죠. 시정하려는 시도는 무리입니다. 사람은 자신이나 시정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의 한 천오백 년쯤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름답고 매력이 넘친 모습일 것입니다.
현재의 그를 그런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열악했던 모습이 잠시 표출된 것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는 지금의 최고의 미남미녀보다 외모가 더 좋을 것이며 지금의 그 어떤 사람보다 지식이 많고 지혜가 뛰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미래가 없는 사람은 현재도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동료로 사귀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미래가 없다는 것은 범죄적 무지를 고집하는 것을 의미하죠. 죽기로 작정하고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99% 이상의 사람들이죠.
당연히 100년 후의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인간은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을 수 있습니다. 시간을 따라 미래의 영원까지 궤적이 이어질 수 있죠. (전도 3:14)
그러니 보고 있는 것은 그의 과거의 모습인 것이죠. 미래가 있는 사람의 과거요. 주목할 가치가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미래를 꿈꿀 수 있지만 지금이 미래의 꿈 가운데의 과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습이나 삶의 모습이요. 비정상적이기 짝이 없는 것들이죠. 꿈처럼 황당한 것입니다.
공상을 그렇게 해본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합니다. 창조주의 관점에서는요.
미래에서 추한 모습으로 온 존재이죠. 꿈 속이기에 추할 수 있습니다. 진지한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죠.
미래가 있는 사람의 현재의 모습이나 삶은 진실이 아닙니다. 꿈과 같이 곧 지나가고 사라질 것이죠. 크게 괘념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에서 온 존재라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