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것을

by 법칙전달자

거룩한 것을


거룩한 것인데 가장 더럽게 여겨지는 것이 성(sex)이죠. 성기와 성행위는 욕의 가장 주된 소재가 됐죠. 관련 명칭 자체가 욕으로 사용되어 언급하기가 거북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상응하는 한자어를 사용하여 그럭저럭 표현하는 정도이죠. 손이나 손가락을 사용하여 성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욕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죽어 마땅한 존재들이나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인간들은 그런 면으로 더럽기 짝이 없게 되었습니다. 구역질 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안타까운 것은 진정한 성적 행복에 대해서 불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적 행복은 에로스와 더불어 아가페 사랑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부부간에만 가능한 것이며 사랑뿐 아니라 크나큰 존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배우자인 여인의 하체를 벌려서 보고 있다고 하죠.


그 장면은 단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무쌍한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미 애액이 넘쳐흐르고 있는 그곳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인 낭성이 어떤 눈빛으로 면밀하고 감상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자체가 애액을 분수처럼 분출시키면서 오르가슴에 이르게 할 수 있죠.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그 행복이 사그라드는 것도 아닙니다. 몇 시간이나 더 지속될지 알 수 없죠.


그것은 부드럽고 가볍게 손이나 혀로 터치될 수 있죠. 자지러지는 비명을 장시간 지르게 될 수 있죠. 울부짖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여성의 몸의 볼거리나 만질거리는 그 부위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죠. 경우에 따라 몸전체가 성감대이며 머리카락부터 발바닥까지 전체가 볼거리이며 만질거리가 될 수 있죠.


성의 화신이 되는 것이죠. 여인이 성적이 되면 몸 전체뿐 아니라 온 영혼이 그렇게 되죠.


그러는 와중에 남성 역시 애액이 끊임없이 흐를 뿐 아니라 삽입 없이도 사정이 될 수 있죠. 사정이 된다 할지라고 약간의 조정기를 지나면 성적 에너지를 여전히 유지되게 할 수 있죠.


아내가 원해서나 남편의 요청에 따라 반대의 자세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은 누워있고 아내는 애액이 줄줄 흐르고 있는 남편의 최대한 발기된 성기와 고환에 대해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죠.


노예처럼 그를 마음껏 부릴 수 있죠. 여신처럼 군림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무엄한 자가 있어 그녀의 눈길이나 손길이나 혀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죠. 그녀의 노리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그의 그 부위를 눈앞에 쩍 벌려 놓고 마음껏 희롱하고 농락할 수 있습니다. 사정을 적절하게 조정해 가면서요. 원하면 그 분출을 감상할 수 있죠. 그리고 바로 재충전되게 하는 기술을 구사하여 성적 에너지가 지속되게 할 수 있습니다. 울부짖으며 자신에게 호소하고 애원하게 만들 수 있죠. 제발 계속 만져달라고요. 뭐든 그녀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죠. 그녀는 이미 요녀이며 성기술자이죠 나날이 발전할 것이고요.


부부는 매일 상당시간을 이러한 극락을 누리며 지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죠.


아담과 하와는 사형선고를 받기 전에 서로 간에 이러한 행복을 어느 정도나 즐긴 것입니까?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 묘사된 것은 거룩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큰 선물인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왜 욕으로 만든 것입니까?


인간은 진정한 성적 행복을 누리는 면에 있어서 불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저주라도 해보자는 것입니까?


도착적이 되어서 아무리 추구해 보아도 원하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물론 현실적으로는 그런 행복을 누리기에는 건강이나 젊음 그리고 외모나 신체상태가 받쳐주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온전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니까요. 특히 도덕적으로 영적으로요. 모든 면에서 결함이 많아서 위의 묘사는 비현실적인 꿈과 같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의 거룩함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조만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창조주께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치면서요.


어떻게 보면 성이란 전체 삶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길어야 몇 시간이면 평온을 찾게 되는 것이죠. 또 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여성의 애액은 24시간 흐르게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그 남편이 즐길 수 있게요.


너의 샘이 축복을 받게 하고, 젊어서 얻은 아내와 함께 기뻐하여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우아한 산염소이니, 언제나 그의 젖가슴으로 만족하고 늘 그의 사랑에 매료되어라.(잠언 5:19,20)


아내도 원하면 언제든 자신의 샘에서 남편이 물을 마시게 할 수 있죠. 궁금하면 언제든 누워 벌려서 문자 그대로 핥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분한 만족을 얻을 때까지 샘물을 흘리면서요.


그런 면에서는 남편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거부할 수 없습니다. 성적으로는 아내는 여신과 같은 존재이죠.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거룩한 것입니다.


반면 성적으로 부도덕한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죠.


성을 욕의 소재로 삼는 것도요.


그러므로 내 아들아, 무엇 때문에 방탕한 여자에게 매료되고 부도덕한 여자의 가슴을 끌어안아야 하겠느냐? 사람의 길이 여호와의 눈앞에 있으니, 그분은 그의 모든 길을 살피신다. 악한 자는 자기 잘못에 걸려들고 자기 죄의 밧줄에 붙들릴 것이다. 그는 징계가 없어 죽고 너무 어리석어 길을 잃을 것이다.(잠5;20~23)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어 필히 죽음에 이르게 하며 그것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왜 성을 부도덕하게 사용하며 욕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입니까? 참으로 죽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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