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뿌리치고 단호하게 거절한다든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곳을 벗어난다든지 하는 행동이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도 군중들이 정치에 참여시키려고 했을 때 그렇게 했죠.
인간이 불필요하고 심지어 해롭기까지 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불공정과 같은 좋지 않은 일을 직접 겪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일에 관한 뉴스를 접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저는 모든 매체에서 일체의 뉴스를 외면한 지가 즉 안 본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눈에 띄어도 신속하게 외면해 버리죠.
그렇게 하기 전에 비해서 비할 바 없는 평화와 자유를 누리고 있죠. 음란물처럼 구토증을 일으키거든요.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눈이 단순하면, 당신의 온몸이 밝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눈이 악하면, 당신의 온몸이 어두울 것입니다. 실제로, 당신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마태 6:22,23)
눈길을 돌리게 하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매일 마주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눈을 “단순”하게 유지하고 “악”하게 유지하지 말라고 훈계하신 이유를 더욱더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마태 6:22, 23, 신세) 그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나오는 ‘단순한’이라는 말은 희랍어 단어 하플루스에서 번역된 것이며, 그 말은 기본적으로 정신의 단일성이나 한 가지 목적에 정성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희랍어 원어로 ‘악한’이라는 말은 포네로스이며, 나쁜, 무가치한, 악의 있는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눈’은 벌어지고 있는 온갖 것들로 인해 산만해지거나 빗나가지 않고, 한 가지 사물에만 주의를 집중합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악한 눈’은 잘 변하고 술책에 능하고 탐욕적이며, 그늘지고 어두운 것들에 이끌립니다.
그러나 “온몸이 밝”기 위해서는 무엇에 눈을 집중해야 합니까? 문맥을 고려해 보면 대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앞에 나오는 구절들에서, 예수께서는 ‘땅에 쌓아 둔 보물’과 ‘하늘에 쌓아 둔 보물’에 관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다음, 눈에 관해 이야기하시고 나서, 그분은 다시 목표의 단일성을 나타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시면서, “한 사람이 두 주인,” 곧 하나님과 재물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에서, 그분은 생활필수품에 대해 가져야 할 견해에 관해 교훈하셨으며, 다음과 같은 훈계로 마무리 지으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19-34.
세상은 단호하게 외면해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눈길을 줄 가치가 없는 더럽고 악한 것들이죠. 호기심을 가져야 할 거리가 전혀 아닙니다. 기웃거려서도 안 되는 것들이죠.
눈이 단순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영혼 자체가 어둡습니다. 예수는 그런 대중들 전체를 외면하셨죠.
세상과 그에 속한 사람들 자체가 심한 어둠입니다. 구경할 가치가 없는 것들입니다. 눈길을 줄 이유가 전혀 없죠.
반면에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는 위 구절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어떤 외면은 밝은 사람들에게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