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변명
어떤 노래 가사에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만큼 늙는 것이 서글프다는 것이죠. 슬프지만 자연의 섭리이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위 일종의 억지가 깃들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비유들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꽃이 곧 시들어 떨어지기 때문에 피어 있는 동안의 잠깐이 더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이죠.
노쇠와 질병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로 인식하도록 하는 세뇌 시도는 여러 면에서 지속적으로 있어왔습니다.
그 면과 관련해서 딴생각, 허황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죠. 전쟁에서 싸우다 죽어도 좀 일찍 죽는 것에 불과하므로 비굴하게 좀 오래 사는 것보다 그 선택이 횔씬 났다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죽음을 매우 예사롭게 다루는데 그것 역시 반발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죠.
물론 죽음은 어떤 경우에도 비정상적입니다.
노쇠와 죽음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어떤 말들도 사악한 의도가 배경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된 유일한 진리는
“그리고 맨 마지막 적인 죽음이 없어질 것입니다.(고전 15:26)”입니다.
죽음은 원수이며 없어진다는 것이죠.
죽음이 영원히 삼켜졌다”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4,55)
이 진리를 거스른 모든 거짓에 따라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죽음에 영원히 삼켜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