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아니더라도
인간 중심원리에 따라 인간이 겪는 재앙들은 인간이 법칙을 거스른 것 즉 죄가 원인입니다.
그러나 어떤 비정상적인 현상들은 전혀 다른 원인일 수 있습니다. 바로 불확정성이죠. 모든 물리, 의식 현상에 적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발생할 확률도 수학적으로는 0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 심장을 구성하고 있는 어떤 전자가 달의 지면에서 발견될 확률도 0인 아닌 것이죠. 전 우주의 어디에서든지요.
인류는 유전의 비밀을 다 밝혀 낸 것은 결코 아니지요. 불확정성이 유전의 어떤 과정에서 적용되는지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머리 둘 달린 뱀(쌍두사)이나 사람(샴쌍둥이)이 태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실패나 하자가 아니라 창조의 법칙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죠. 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숭이도 나무 사이를 건너뛰기하다가 떨어질 경우가 있죠. 불확정성에 따른 어떤 확률에 의한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그분에게 물었다. “랍비, 누가 죄를 지었기에 이 사람이 눈먼 채로 태어났습니까? 이 사람입니까, 아니면 부모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의 부모도 아닙니다. 다만 그를 통해 하느님의 일이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9:1~3)
여기서 하느님의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느님 자신의 뜻이나 특성과 관련된 어떤 점을 피조물들에게 알리기 위함인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위의 맹인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늘에는 만군 혹은 열두 군단과 같은 천사들로 이루어진 군대 조직이 있습니다. 아마도 찬사들이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에 대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창조가 실패하면 안 되니까요. 불확정성은 자유의 절대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천사나 인간들이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음을 의미하죠. 그 경우마다 다 대비 혹은 대응책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자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게 불 칼이 지키게 하였죠. 그리고 예수의 대속과 하늘정부를 마련했습니다. 창조가 실패하면 안 되니까요. 대홍수 같은 것도 어떤 부득이한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아마겟돈이라는 다가올 멸망도요.
자유를 주었으므로 어떤 행동이든 제지하지 않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반드시 관장하여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창조주의 이름인 여호와는 ‘되게 하다’는 의미이죠. 그분의 창조목적을 위해서 무엇이든 되게 할 것입니다.
죄가 아닌 원인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즉각 해결이 될 수 있죠. 3층 창문에서 바울의 연설을 듣던 한 청년은 졸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살려주었죠.(사도 20:9)
지금 절대다수의 인간들처럼 고의적인 악을 행하는 경우 기다리는 것은 멸망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원인으로 인한 비정상 현상들에 대해서는 바로라도 정상화될 수 있죠.
피조물인 인간들이 어떤 창조의 섭리와 창조주의 처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그 법을 거스르는 것은 영원한 소멸을 의미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