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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l 02. 2022

한계와 속박

한계와 속박     


인간은 무수한 한계 안에 있지만 원래는 속박 하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한계는 앞으로도 영원히 있게 되겠지만 속박은 비본래적인 것이어서 일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그에서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계라는 것은 무수한 물리적, 생리적, 심리적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는데 그것은 한계라고 할 수 있지만 속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도 역시 한계이지만 속박이라고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칭찬은 기쁘고 징계는 슬프지만 역시 속박은 아닐 것입니다. 자연법칙들은 철저히 한계로 작용하지만 속박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먹어야 살지만 정상적인 사람은 먹음을 속박으로 느끼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과 죄 그리고 죽음은 속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속박이라는 말에서 1차적으로 연상되는 것은 사회적 압제이겠지만 크게는 정상적인 사람이 벗어나고 싶은 모든 것을 속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있어서 예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인간 개인의 사상, 언어, 감정, 행동 등등을 전적으로 그가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처럼 절대적인 자유를 부여받았지만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참된 행복을 얻는 것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자유는 오히려 저주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한 유명한 말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가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에서 손이 주어진 것은 인간이 선택한 것이 아니지만 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렸듯이 그런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인간 개인에게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성서와 온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자유의지의 철칙이라고 하며 인간 창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속박은 이 자유의지를 잘 못 사용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속박하에 놓이지 않을 수 있는지는 인간이 알 수는 없습니다.      


첫 인간 부부는 단지 선악과를 따먹지 않음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창조의식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전혀 짐스럽지 않은 선택을 통해서 인간은 속박이 없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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