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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Oct 02. 2021

돈 한 푼 안 드는걸

돈 한 푼 안 드는걸     

 

사람이 35세에 이르면 95%가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지배되어 생활한다고 합니다. 정치판을 보면 상대방 진영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거의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인의 잘못에 대한 원칙은 덮어주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는 습관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든지 그 쓰라린 결과에 심한 타격을 받지 않게 위로한다든지 하는 것이 동료 인간에 대한 도리라는 것이죠. 이해와 동정심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이죠. 적대적인 국가 간에 당국자들의 언사를 보더라도 아무리 수준 높은 용어를 쓴다 해도 상대에 대한 비난과 공격, 위협이 깃들여 있죠. 정치가들이나 당국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의식 자체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일상에서의 말투에 비속어가 사용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대립적인 입장에 있는 타인에 대해서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투덜거림의 대상이 자신인 경우도 많죠.     

 

상대가 타격을 받으면 내심 흐뭇하고 잘 되면 불안하죠. 둘 다 그릇된 그리고 병적인 심리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연되어 있죠.      


사실 타인에게 욕을 하거나 폭행을 하거나 죽이는 것은 그 자체가 궂은 일입니다.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지탄을 받는 일이기도 하죠. 역겹고 악한 일이죠. 동료인간에게 그렇게 한다는 것이......     


절도나 강도 혹은 사기를 치는 것과 그렇게 하지 않는 것 어떤 것이 더 쉽습니까? 선량한 어떤 사람이 부득이한 이유에서 강도짓을 하겠다고 작심하고 실제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고 쉬운 일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악한 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그 일을 하는 것이 역한 것입니다. 하지 않는 것이 편한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 데는 돈 한 푼 들어가지 않죠. 타인을 미워하지 않는 것, 욕하지 않는 것에는 돈 한 푼 들지 않고 신체적인 노고가 수반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해하고 관용하고 사랑하는 데는 기쁨이 따르죠.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의 의식구조는 그렇게 되기가 불가능합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는 것이죠. 매우 악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누구나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죠. 욕을 하는 것이 나의 문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악이 뿌리 깊이 일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죠. 이미 대부분의 인간들의 의식은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화 되어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식으로 프로그램화 되어 있죠. 무의식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독되어 있어 멈출 수 없습니다. 편파적인 시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양상에 따라 일희일비해야죠.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오락물을 접해야 마음이 안정되는 것입니다. 사랑, 진리, 정의 등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추구하는 것은 일상에서 너무 멀어졌죠. 마치 경기를 일으키는 것 같은 태도로 거부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부정적인 것, 악한 것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중독의 결과는 희망 없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소중한 것이 아닙니까? 존엄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처럼 도덕적으로 비루하게 살다가 죽는 것은 존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글을 접하여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받는 것 자체가 그 존엄성을 회복할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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