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를 느껴야
사람은 자신의 생각, 감정이 중요하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로 쓰기에 급급합니다. 당연한 면도 있습니다. 표현 본능이라는 것이 있고 자신의 정신이 여러 생각들로 풍성하다고 느끼면 말이나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하죠.
그러한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이 가난하다고 느끼기는 힘들 것입니다.
자기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마태 5:3)
공부와 사색을 많이 해서 자신의 정신이 풍요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러한 필요를 느낄 리가 없습니다.
주워들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 가운데 있는 것들이 사실은 쓰레기라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죠.
뇌의 뒤편의 어디엔가 그 쓰레기장이 있다고 하죠.
그것이 자신의 생각이건 보고 들은 타인의 생각이건 사견(私見)이며 “사견(私見)은 사견(邪見)”이라는 원칙에 대한 이해도 갖지 못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주장이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분열과 혼란, 소란,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것이죠.
그러한 사견이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생각은 변죽스럽기도 합니다. 말이 금방 바뀌는 원인이죠.
그러면서도 영적인 필요, 진리에 대한 필요, 사랑에 대한 필요는 느끼지 못합니다. 병들어 있는 것이죠. 암과 같은 치명적인 병이요. 누가 암치료제라고 주어도 필요 없다고 하죠. 자신이 그런 병에 결려 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니까요.
결국 개돼지가 됩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십시오.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십시오.(마태 7:6)
자기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마태 5:3)
이 말 자체도 거부할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죠. 자신의 생각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죠.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요.
솔로몬은 이런 면에서 인간과 같은 자가 천에 한 명 정도라고 했는데 그렇게 된 원인이 창조주에게 있지는 않습니다.
보라! 오직 이것을 내가 알게 되었으니, 참 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올바로 만드셨건만 그들 스스로 여러 가지 꾀를 찾아냈다는 것이다.(전도 7:29)
스스로 찾아낸 가치 있는 생각이라 여기는 것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색’에도 찾아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죠.
그런 것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말씀이, 창조의 법이, 진리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고 여기는 것이죠.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하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3)
그들은 결코 창조주의 통치의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그 소식을 받아들이지도 않아 그 통치의 축복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곧 죽어 없어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