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이라도
자연 상태의 꽃은 멀리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서 만져 보거나 냄새를 맡아도 불쾌하지 않습니다. 나무도 그러합니다. 나무에 달린 과일은 따서 먹기도 하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래 가사가 있는 데 어떤 풀밭은 직접 가보면 배설물이나 오물로 악취가 나고 호감을 주지 않는 곤충들로 우글거릴 수 있죠. 쓰레기가 나뒹굴 수 있죠. 가시 달린 잡초들이 무성할 수 있고 쥐나 뱀이 드나들 수 있죠. 그대로는 도저히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일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잘 알지 못하고 멀리서만 보는 경우 부정적으로 느낄 이유가 없겠지만 막상 가까이에 있으면 냄새가 날 수 있고 신체상의 결함들이 눈에 띄게 되죠. 그렇더라도 접촉을 하게 되면 인격적인 결함도 표출이 되어 결코 호감을 가질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추천을 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반려동물이라면 쓰다듬고 안고 뽀뽀도 할 수 있지만 사람은 도저히 그렇게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꽃’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렸을 때의 자기 자녀에 대해서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는 정도이죠.
모든 사람이 꽃이나 나무와 같다면 세상은 낙원이죠. 비유적으로 가까이서 만져도 부드럽고 냄새를 맡아도 향기롭고 따 먹을 수 있는 과일도 산출한다면요.
모든 인간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러한 나무나 꽃에 비유되는 인간이 있기나 합니까? 신체적으로도 자연상태로 그러한 사람은 거의 없지만 속사람은 더욱 그러합니다.
세상은 낙원, 동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멉니다. 가까이 가기도 싫은 끔찍스러운 초원과 같은 곳입니다.
세상은 그러하지만 이미 형성되어 있는 영적 낙원도 있습니다. 기원 1세기에도 잠깐 존재했었죠.
세상과는 비유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문자적으로는 가까이 방문하여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염려 없이 편하게 누워 잠잘 수 있는 초원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