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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필요

by 법칙전달자

영적 필요


멀리서 대화를 나눌 필요는 전화를 발명하게 하였습니다. 그런저런 필요 때문에 TV나 자동차가 나왔습니다. 처음에 흑백TV가 나왔을 때 그것은 진기하고 가치가 높은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쓰레기 취급당하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없는 것이죠.

어떤 사람이 실제 암에 걸렸어도 자각증세도 없고 진단받은 적도 없다면 암치료제라고 누가 그냥 주어도 필요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통증이 있어서 진단받아 보았더니 암이라고 하면 절실히 필요할 것입니다.


인간은 여러 종류의 필요를 느낍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필요가 충족되어야죠. 그 유명한 산상수훈의 첫마디는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행복하다.”입니다. 한글개역에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로 되어 있죠.

사람들은 음식, 돈, 친구, 이성, 여행, 오락 등등의 필요를 느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영적인 양식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영적으로 죽어 있거나 중병에 걸려있죠.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 영적인 양식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갖다 줘도 거절하는 것이죠. 아니면 자신이 영적으로 부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어떤 사람은 온갖 철학을 다 섭렵하였다고 생각하고 그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음식에 대한 필요를 느낀다고 해서 아무거나 잡다한 것들을 배에 몰아넣고 음식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만물은 물질과 그 현상만으로 되어 있습니까?(무신론) 아니면 조물주가 처음에 한번 완전하게 만들어 놓고 그 다음부터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놔두는 것입니까?(이신론) 아니면 만물의 본질인 에너지 그 자체가 신입니까?(범신론) 혹은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며 지대한 관심이 있는 그런 창조주가 실제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런 것은 알 수 없는 문제라고 단정 짓고 아예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물질적, 신체적, 정서적, 지적, 사회적 필요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필요’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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