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짓는 죄
사람은 성적으로 즉 남성과 여성으로 태어납니다. 때가 되면 성기관과 성감대가 발달하죠. 성적 행복은 인간에게 주어진 소중하고 신성한 선물입니다. 물론 거의 아무도 그런 식으로 성교육을 받지 않습니다. 성이 사랑은 물론이고 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도 모르지요.
10대 후반이 되면 성호르몬이 뇌의 60%까지 지배한답니다. 강한 호기심과 욕구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에 대해 정상적으로 받은 교육 없이 부도덕한 성환경에 노출되죠. 비정상적인 성적 행동을 하게 되죠. 그것이 해롭기 때문에 도덕적, 관습적, 법적으로 여러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이 사회의 전통규범에서 많은 금기들을 두어왔습니다. “남녀 7세 부동석”이라고 하는 것이죠. 의복들은 대부분 몸 전체를 두리뭉실하게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성적 행위는 정혼한 부부에게만 국한했죠. 음행의 그리스 어원인 포르네이아는 크게 모든 비정상적인 성행위에 해당됩니다. 사실 오늘날도 행동 뿐만 아니라 언어적으로도 성적으로 누추한 말을 하면 특히 정치인 같은 공인이 그렇게 할 경우 크게 지탄받고 제제가 가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서에는 음행을 자기 몸에 짓는 죄(고전6:18)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성적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일으키게 한다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사회에는 공식적으로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있습니다. 음란물이나 성매매도 단속되고 있는 지역이 많죠. 그렇지만 이미 성해방이 된 지 오래 되었다고 하고 어느 때보다 많은 성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경우 간통도 법적인 죄는 아니게 된 것이죠.
배우자 이외의 상대와의 성적 접촉이 쾌락이 아니라고 하거나 위생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를 반드시 초래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부부간에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강해지는 진정한 성적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장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적으로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성적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위에 묘사된 그러한 성적 행복을 누리는 부부는 거의 없으니까요.
이는 창조주가 정한 도덕표준이 성적으로도 옳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사실 딸이나 누이 같은 자신의 가족 성원이 음란물의 연기자인 것을 보거나 유흥업소에서 성적 서비스를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뒤틀릴 것입니까? 본질상 구역질 나는 반응을 일으켜야 할 그런 것에 대해 탐닉하려 하는 것은 명백히 도착적이고 변태적이고 범죄적인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성적으로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창조주만이 정할 수 있는 도덕표준을 무시하고 사는 삶은 모든 면에서 어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