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과 생명

by 법칙전달자

식빵과 생명


여기서 식빵이란 아인슈타인의 시공식빵을 말합니다. 우주의 시작시점부터 영원한 미래에 이르기까지의 전체가 담겨 있죠. 지금의 단면을 세로방향과 정확히 90도가 되게 자르면 그 단면에 지금 시점의 전우주가 담겨 있죠. 1cm 우측을 그렇게 자르면 1억 년 후의 우주의 전체가 그 단면에 있고요. 비스듬히 자르면 그 단면의 어떤 지점은 100억 년 후 어떤 지점은 200억 년 후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죠.


그리고 좌측 끝은 있어도 우측 끝은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이 전체를 외부에서 다 볼 수 있다고 했죠.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신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인간과는 전혀 다른 것이죠. 전체 시공을 한꺼번에 볼 수 있죠.


또한 생명이라 할 때는, 마치 지식이라고 할 때 명시가 없어도 당연히 정확한 정보임을 의미하는 것처럼, 영생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는요. 영생이 아닌 것은 인간의 생명이 아니죠.


인간들은 책이 첫 페이지가 있고 마지막페이지가 있다는 것처럼 인생도 끝이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많은 비유를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개소리인 것입니다. 그런 삶은 개의 삶 즉 짐승의 삶인 것입니다.


의식 주준이 짐승 수준인 것이죠.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본질상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공언하죠. 진화론에 따라서요. 지능이 약간 높은 짐승일 뿐으로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눈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보아야 믿을 수 있다고 하는데 보지 못하는 것이죠.


시초부터 있었고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고 우리가 지켜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곧 생명의 말씀에 관해 여러분에게 씁니다. 그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보았기에 여러분에게 증언하며 알립니다. 그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요한 1서 1:1,2)


보았다. 지켜보았다. 만져 보았다고 함으로써 그 실제성을 강조한 것이죠. 마치 신이 시공식빵 전체를 보듯이 그렇게 본 것이죠.


참하느님께서 만드시는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사람들이 그분을 두려워하도록 참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이다.(전도 3:14)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전자조차도 그 수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없어진다거나 새로 생긴다는 것이 있을 수 없죠.


그런데 만물은 인간 중심 원리에 따라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영원하다면 당연히 인간은 영원해야죠.


영원히 살지 못할 인간은 인간이 아닙니다. 뻔히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알립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친교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요한 1서 1:3)


인간은 영원히 실면서 창조주와 친교를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쓴 요한도 지금은 그런 상태이죠.


요한 1서의 결론 부분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느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시어 우리가 참된 분에 관한 지식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참된 분 안에 있습니다. 그분은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요한 1서 5:20)


하느님 자신을 영생이라고 표현하고 있죠. 그리고 시공식빵 전체를 볼 수 있는 그러한 통찰력도 얻게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성서 즉 말씀이 존재하게 된 이유입니다.


인간은 죽은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눈(통찰력, 영안)이 없어 생명을 보지 못하는 짐승이거나 생명(영생)을 누리는 사람이거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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