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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l 16. 2022

절대와 상대

절대와 상대   

   

“절대적인 것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가?”라는 물음이 있습니다. 그전에 ‘절대’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지요.      


우선 ‘상대’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절대’는 세상에 가득 차 있습니다. 3은 그 자체가 3 즉 절대개념입니다. 그러나 손가락 수로는 적은 것이 되고 눈의 수로는 많은 것이 되지요. 기준이나 비교 대상이 있어야 가부를 말할 수 있는 것 즉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상대개념이지요. 사과 맛은 배 맛과 비교할 때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라는 존재도 그렇고요. 그러므로 사과나 사과 맛은 절대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절대라는 것은 영원, 무한 혹은 완전이라는 개념과 연관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육제도는 상대경쟁체제입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도 상대적인 차이에 의해서지요. 즉 동료 간의 경쟁에서 순위에서 앞서야 원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상대적인 것은 경우에 따라 무가치할 수 있습니다. 1등이라는 것도 무의미한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지요. 100m를 15초에 뛴다고 할 때 그 기록으로는 어떤 경주에서는 꼴찌가 되기도 하고 일등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동료와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완성 혹은 무한 영원한 것을 향한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때 그것은 절대 경쟁이 됩니다. 교육에는 절대경쟁체계가 도입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에 대한 사실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다음과 같은 것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이 과연 올바른 명분이 있는 것인가 혹은 유익한 것인가 혹은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가 등등을 고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이 숭배하는 신의 명령이라고 한다면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그 행동을 한다고 할 때 ‘절대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쟁점이 되는 것은 과연 그런 식으로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절대적인 것이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답은 절대적으로 ‘그렇다’입니다. 인간은 진정한 삶과 행복을 위해 나름의 부실하고 얄팍한 생각으로 따져보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할 절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현재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더라도 따라야 할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임의적이고 상대적인 가치관으로 세뇌되어 있어 세상에 편만한 이 절대를 무시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절대적으로 파멸하게 됩니다. 세상은 인간의 생각이나 성향, 관심사와 전혀 상관없이 만물을 지배하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법칙에 의해 운영됩니다. 결국 살기를 포기한 사람들만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다수가 이에 속하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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