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인내
인간의 고난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신체적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난이 있습니다. 질병과 통증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만 강한 상관관계는 아닐 수 있습니다. 통증이 거의 없어도 병의 상태가 심각한 경우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고통의 강도에 따라 차라리 죽여 달라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통증 자체는 완화시켜주는 약품들이 있죠.
인내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은 꼭 원죄 때문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불확정성에 따른 유전자의 어떤 작용에 의해 소경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이나 천사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하죠.
의식 즉 자유의지를 가진 모든 존재들은 그 어떤 황당무계하거나 기고만장한 생각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차단하지 않고 발전시키면 욕망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욕망이란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단계에서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지 않게 억제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통각세포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통이라는 것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비약하자면 인내라는 것은 인간본연의 어떤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그릇된 선택이나 외적 조건이나 타인의 그런 선택에 의해 부득이 하게 인내해야할 상황이 생깁니다.
질병도 자신이 관리할 수 없었던 어떤 원인으로 생길 수 있고 부당하거나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거나 모욕이나 구타를 당할 수 있죠.
일탈행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통증 때문에 마약을 사용할 수 있죠. 폭력적인 저항이나 탈옥을 시도하거나 광적인 언행을 할 수 있습니다. 자살할 수도 있죠. 비겁한 타협이나 굴종의 태도나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태도가 못마땅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탈행위를 하면 더 큰 고초가 예상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부득이하게 참는 것이죠.
본연의 인내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분의 영광스러운 위력에 따라 모든 능력으로 강해져서 참을성과 기쁨으로 온전히 인내하면서, 빛 가운데 있는 거룩한 자들의 상속 재산에 참여할 자격을 갖게 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하기를 바랍니다.(골로새 1:11,12)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날 때에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십시오. 그처럼 시험받은 믿음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가 그 일을 온전히 이루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온전해지고 모든 면에서 건전해져서 아무것에도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야고보 1:2~4)
인내는 "참을성과 기쁨"으로 한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게 하는 성공적인 인내는 매우 유익한 목적을 달성합니다.
인간에게는 참을성이라는 것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통각세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어떤 고통들은 틀림없이 유익합니다. 통각이 작동하지 않아 불에 데어도 칼에 찔려도 아프지 않아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면 바로 사망에 이르게 될 수 있죠.
어류이하의 하등동물은 통각세포가 없어 몸이 난도질을 당해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죠.
고난, 고통을 버티는 성질인 참을성이라는 것도 필요 없겠죠.
인내는 완전한 인간인 예수에게도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그들의 구원의 수석 대표자(예수)를 고난을 통해 완전하게 하신 것은 합당한 일입니다.(히브리 2:10)
그는 아들이셨지만, 자신이 겪은 고난으로부터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의 영원한 구원을 책임지게 되셨습니다.(히브리 5:8,9)
문제는 참을성으로 온전히 인내하고 “기쁨으로” 인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죠.
심지어 병석에 누워서도 기쁨에 넘칠 수 있을까요?
“많은 아들들을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해” 그리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의 영원한 구원”이라는 표현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신체 상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신에서 생생하게 하는 어떤 생각은 신체의 상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나쁜 생각은 멀쩡한 사람도 앓아눕게 할 수 있지만 어떤 생각은 그 반대의 효과를 가져 오게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인내해야할 상황이 생기는 것은 환영할만한 것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까요.
참을성도 발휘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지만 인간으로서 온전해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기다리고 기다렸던 절호의 찬스를 맞이한 것처럼 기뻐할 수 있는 것이죠.
당신도 이러한 인내라는 것을 하게 되길 바랄 수 있을까요?